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더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외로움이나 마음의 상처, 절망, 먹먹함 같은 감정이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외로움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낯선 호텔방의 침대에 혼자 앉아 여자는 편지를 읽고 있다.
우리는 그림 속 여자의 나이나 직업, 호텔방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사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바닥에 벗어던진 하이힐, 서랍장 위의 모자, 소파에 놓인 겉옷으로 보아 도시의 세련된 여성일 것이란 짐작을 하게 한다.
그런데도 이것만은 분명하게 전달된다. 여자는 지독하게 외롭다. 그 외로움은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무늬만의 외로움과는 체감온도가 다르다. 외롭다는 말조차도 침묵하게 만드는, 심장을 아프게 하는 진짜 외로움이다.
호퍼는 외로움의 언어로 여자의 고독을 보여준다. 벽면과 실내가구의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들어낸 밀폐된 사각형 안에 여자는 홀로 갇혀 있다. 심리적으로 고립되었다는 뜻이다. 사선으로 배치된 침대 역시 차갑게 느껴진다.
침대 시트와 편지의 조명은 가장 밝은 반면 여자의 얼굴과 침대 밑은 가장 어둡다. 빛과 어둠을 강렬하게 대비시킴으로써 편지를 읽고 여자가 상처를 받았음을 강조한다. 미처 짐을 풀지 못한 여행 가방은 머무를 곳이 없는 떠도는 인생을 의미한다.
미국의 시인 마크 스트랜드는 호퍼의 그림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림 속 사람들은 배역으로부터 버림받은 등장인물처럼, 기다림의 공간 속에 홀로 갇힌 존재들이다. 그들에겐 특별히 가야 할 곳도, 미래도 없다.’
이 그림에는 호퍼만이 표현할 수 있는 외로움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심리적인 거리 두기다. 우리는 여자의 외로움에 감염되어 위로해 주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끼지만 안타깝게도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한다. 여자의 외로움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왜 타인의 외로움을 나눠 갖지 못하게 한 걸까? 왜 여자 혼자서만 외로움을 견디게 한 걸까?
그 해답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유와 독립, 자신의 자아로 가득 찬 시대에 태어난 대가로 모두 이런 외로움을 맛보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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