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면서 이제 여름이라 생각하고, 네게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아니면, 화분에다 심었는지 그 화분이 어떻게 허연빛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네가 심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와 발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시 코로 숨으로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둥근 것들은 왜 그리 환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봄은 이렇게 지나고 다시 여름이구나 몸을 벽에 붙여보는 것이다 그러니 작약이라니 나는 그게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르고 나도 아니고 너는 더구나 아닌 그 식물의 이름이 둥그렇게 떠올라 나는 네가 심었다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또 그런 작약이 마냥 지겨운 건 무슨 까닭인지 심고 두 손을 소리 내어 털었을 네가, 그 꽃이, 심었다던 작약이 징그럽게 피어
‘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나’, 시인의 애타는 사랑과 고독을 슬금슬금 끌고 나간다. 리드미컬하고 아름답게. 구슬을 굴리듯이, 혀 밑에 향기롭고 달콤한 알사탕을 굴리듯이, 시인이 굴리며 놀고 있는 사랑의 몽상. ‘네가 심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와 발 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시 코로 숨으로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마치 그 속에서 한 이미지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번지는 화가의 뇌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시인은 온밤을 작약 생각, 그 여인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마냥 행복해하다가 그런 자기가 마냥 지겨워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외로운 방에 ‘징그럽게 피어’ 나는 그 작약!
함박꽃으로도 불리는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그 여인은 심었다는 말만 하고 그 뒤 소식을 전하지 않았나 보다. 시인은 또 꽃 좀 보자 말 건네지 못했나 보다. 시인이여, 작약 꽃은 5∼6월에 핀다 하네요. 이제 작약 꽃을 보면 시인 유희경 생각이 나리. 그래서 더 아름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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