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2월 말 추운 날씨 아래 몇 시간이나 계속 앉아 있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만 명이 모여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광경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었다.
한때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왕조를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번 취임식은 새로운 여왕의 대관식 같은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대 받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하며 가만히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수 싸이의 공연이나 다채로운 아리랑 합창 등의 연출은 너무도 현대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내 눈을 끈 것은 새 대통령 뒤에 나란히 자리한 전(前) 대통령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부부 참석은 당연하지만 전두환 김영삼(YS) 전 대통령, 그리고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모두 새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적지 않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다.
DJ도 YS도 원래 박정희 정권하에서 고난의 나날을 보낸 야당 지도자다. 특히 DJ는 일본 도쿄에서 납치돼 생명을 위협받은 일이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맞이한 ‘서울의 봄’을 힘으로 억지로 빼앗은 사람이 전두환 씨였다.
하지만 곧 정권을 차지해 전 씨를 심판대에 세운 것이 YS 정권이라면 응보를 끊고 화해를 연출한 것은 DJ였다. 그런 그를 계속 뒷받침한 이희호 여사…. 나란히 앉아 있던 사람들은 한국이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고난의 길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각자 가슴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새 대통령은 과거 DJ를 찾아가 아버지 정권의 탄압을 사과한 적이 있다. 나는 새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찬양했을 때 당시 일을 떠올렸다. 오히려 내가 ‘뭐지’ 하고 생각한 것은, 그의 입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다. 이는 아버지가 이룬 ‘한강의 기적’을 자랑하자는 게 아닐 수 없다.
대통령선거 중에는 아버지에 대한 찬사를 봉인하고 있던 딸이다. 꿈을 이룬 지금, 민주화를 기리는 한편 아버지의 발자취도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다고 어필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 아버지를 일찍이 일본에서 극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였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빛’의 면에 주목했던 것만은 아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과 관련해 강력한 군사정권이라면 한국의 들끓는 반대를 돌파할 수 있다는 오히려 ‘그림자’의 부분에 기록이 남아 있다.
그야말로 우파 현실주의자다운 발언이지만 기시 씨야말로 일본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가진 정치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림자는 옛 만주국 고위 관료를 지냈고 태평양전쟁 개전에 상공(商工) 대신으로 참석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전후 한때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기도 했다.
빛의 부분은 그가 결국 총리가 돼 1960년 일미 안보조약 개정을 이룬 것이다. 국회에 밀려든 격렬한 반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여대생 사망자가 나오면서 그는 총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불평등을 바로잡은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지나면서 높아졌다. 아베 총리는 당시 다섯 살에 불과했지만 혼란 속에서도 신념을 관철한 할아버지의 모습에 빛을 느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왔다.
그런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친했기 때문이지만, 함께 ‘빛과 그림자’를 가진 두 사람의 자손으로 공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베 총리도, 박 대통령도 정치인으로서 정점의 자리를 목표로 해온 심리 이면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함께 자신의 힘으로 그들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야당 후보와의 격렬한 싸움을 이겨낸 박 대통령이 밝은 마음으로 ‘한강의 기적’을 꺼낸 심정을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한강의 기적’ 재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공정한 시장이나 중소기업의 육성 등 ‘경제민주화’라고 했다. 아무래도 쉬운 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재벌 육성으로 경제를 이끈 아버지와는 다른 시대감각을 표명한 셈이다. 만약 정말로 실현할 수 있으면, 그는 아버지를 극복하게 된다. 과연 기적은 또 일어날 것인가.
한편 나는 오늘부터 반년 예정으로 서울에 체류한다.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 1년간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운 이래 31년 만의 ‘유학’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전하기로 하고 우선은 고난한 과정이 계속되고 있는 새 대통령의 출범을 이 나라에서 차분히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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