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김화성]엉거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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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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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풋! 가끔 군대 회식 장면이 떠오른다. 천방지축 몸을 흔들어대는 젊은 수컷들의 집단막춤. 전 소대원이 미친 듯이 침상마룻바닥을 구르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팔다리를 제멋대로 건들댄다.

이제 갓 입대한 이등병에서부터 소대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허튼 춤사위가 동시다발로 펼쳐진다. 그야말로 아라리난장이다. 어깨춤, 병신춤, 도리깨춤, 절굿대춤, 개다리춤, 막대기춤, 몽둥이춤, 엉덩이춤, 뚝배기춤, 깨끼춤, 돌단춤, 멍석말이춤, 허수아비춤, 돈돌라리춤….

한국인의 대표적 몸짓은 ‘엉거주춤’이다. 어딘지 촌스럽고 엉성하다. 그런데도 다들 몸에 익어서 자연스럽다. 짜리몽땅한 몽골리안들의 습관일까. 아니면 앉아서 생활하는 온돌문화의 흔적일까. 요즘도 한국 사람들은 무시로 엉거주춤 앉고, 또 엉거주춤 일어난다.

탈춤이나 전통무예 택견의 기본시작자세도 바로 엉거주춤이다. 고구려무용총 그림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래만 겨우 가린 두 사내가 엉거주춤 겨루기자세를 취하고 있다.

‘저녁에서 아직 밤이 오기 전의 시간에/엉거주춤 한 허리 부여잡고 애쓰며 걸어가는 춤/… 서 있지도 앉지도 못한 자세로 반쯤 서 있는/이 시대의 새로운 춤, 엉거주춤/…그리하여, 완전히 서 있는 것보다 배는 힘이 들어/게다가 앉아있는 것보다는 10배는 힘이 들어’ <김신영 ‘엉거주춤’에서>

김익두 한국풍물굿학회장(전북대 국문과 교수)은 “한국인은 단전에 기운을 모으고 앉았다가, 뭔가 기운을 쓰려 할 땐 엉거주춤 자세로 선다. 싸이의 말춤도 엉거주춤 자세와 비슷하다. 말춤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엉거주춤의 뿌리는 굿판이다. 한국의 굿판은 춤과 노래의 한마당이다. 무당은 우선 신령이 하늘에서 내려오면 신과 한판 ‘신나게(신이 나오게)’ 논다. 엉거주춤 두 발을 모으고 깡충깡충 뛰면서, 두 손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도굿대춤을 춘다. 그러다가 신령이 무당 몸에 지필 즈음엔 움찔움찔 어깨를 들썩이며 무아경에 들어간다. 싸이의 말춤이 바로 그렇다. 얼씨구! 신바람이 들어 있다. 신들린 무당의 보릿대춤처럼 단순하면서도, 사람을 끄는 묘한 마력이 있다.

엉거주춤은 애매하다. 일어서려는 건지, 앉으려는 건지 모호하다. 택견 겨루기자세도 한판 맞짱 떠보자는 건지, 한판 신나게 놀아보자는 건지 알쏭달쏭하다. 선수는 나오자마자 어깨를 으쓱대며 한껏 폼을 잡는다. 허공에 공연히 발길질을 해보거나, 공중제비돌기를 하며 우쭐댄다. 푸하하! 어쭈∼, 탈춤의 양반걸음으로 판을 한 바퀴 쓰윽 돌기까지 한다. 기합소리는 또 어떤가. “이∼크!” “이∼크!” 뭔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연신 킁킁댄다.

그렇다. 택견은 어느 땐 농악 춤사위 같고, 어느 땐 겅중겅중 탈춤을 추는 것 같다. 그저 보기만 해도 흥이 난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우쭐우쭐, 어깨를 들췄다 놓았다 으쓱으쓱∼. 모든 몸짓엔 반드시 ‘멈칫거리는 완충동작’이 숨어 있다. 내지를까 말까, 멈칫멈칫, 엉거주춤하는 몸짓 속에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모두 들어 있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살아남았다. 전 세계 태권도 인구는 204개국에 걸쳐 8000여만 명이나 된다. 10만여 해외 태권도장에서 배출한 초단 이상 유단자만 800만 명에 이른다.

이제 태권도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 개 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금메달을 많이 따면 딸수록 역효과가 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태권도를 단순한 무도에서, 하나의 한류문화로 만드느냐에 있다. 태권도엔 한국인의 신바람이 보이지 않는다. 신명과 흥이 우러나지 않는다. 택견을 보면 그 답이 있다. 태권도의 엉거주춤한 겨루기자세에 그 씨앗이 있다.

그렇다. 춤이란 누가 뭐래도 ‘저절로 추는 춤’이 최고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들썩거리는 게 으뜸이다. 박자나 형식은 아무려면 어떤가. 엉거주춤하면 또 어떤가.

군대 막춤이 가끔 그립다. 그 무아경의 집단신명. 그 맹목적이고 타는 목마름의 떼춤. 회식 때마다 침상마룻바닥은 왜 그리 왕창 내려앉았던가! ‘돌진하면 돈다발이 쏟아진다는(러시앤캐시)’ 세상. 왜 늘 엉거주춤 사는지 모르겠다.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
#군대#막춤#엉거주춤#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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