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고기정]북-중 접경의 한 식당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1일 03시 00분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북한과 접해 있는 중국 랴오닝(遼寧) 성의 한 마을. 조선족 동포가 운영하는 불고깃집으로 탈북자 여섯 명을 초대했다. 하루 종일 숨어 지내 ‘외식’이 그리울 터였다.

“요리 마음껏 시키세요.” 기자의 권유에 메뉴판을 펼쳐든 그들은 이내 그냥 내려놨다. “우린 이런 거 잘 모릅네다.” 한 여성 탈북자의 대답이다.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싶어 “음식값이 참 싸네요. 드시고 싶은 거 아무거나 주문해도 됩니다”고 말하며 거듭 권했다. 다들 고개를 숙인 채 쭈뼛쭈뼛 눈치만 봤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 후 한 남성 탈북자가 불쑥 말했다. “난 랭면이요.”

불고깃집이지만 족발 해산물 등 수십 종의 메뉴가 있었다. 그런데 용기를 내 주문한 것이 냉면 한 그릇이었다. “냉면은 고기 드신 후 시켜도 됩니다.” 결국 1인당 요리 한 개씩 고르도록 의무적으로 할당하다시피 했다.

배가 고파 국경을 넘은 탈북자들이지만 식당 메뉴가 무슨 요리인지, 어떻게 주문하는지 몰랐다. 전채와 주요리, 후식 등으로 나눠진다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물론 북-중 국경도시 단둥(丹東)에서는 백화점에서 고가의 물건을 사 나르고, 안마시술소에 몸을 맡기는 북한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외교관이나 ‘외화벌이 일꾼’ 무역상 그리고 그들의 부인 등 가족이다. 하지만 한 달 임차료 500위안(약 8만7000원)짜리 숙소에서 많게는 열 명씩 숨어 사는 탈북자들은 그저 밥 한 그릇이 아쉬운 사람들이다.

이들이 중국에 와서 놀라는 건 풍요다. “여기도 먹고살기 힘들다”라는 말엔 “여기선 아무리 못살아도 밥은 꼬박꼬박 먹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 놀라는 건 북한에 대한 진실이다. 북에 있을 때 핵은 미제(美帝)로부터 민족의 생존을 보호할 수 있는 절대 가치였다. 지금도 1, 2차 핵실험 때 느꼈던 짜릿한 집단흥분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핵이 민족의 자주를 지켜주는지, 아니면 김씨 왕조만 지켜주는지 혼란스럽다. “(당에서) 입만 열면 강성대국 열겠다고 해서 인내하고 살았습네다. 그런데 그동안 좋아진 게 뭐 있습네까.” 냉면을 주문했던 남성의 말이다.

이런 각성들이 모여 북한을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이들의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정보의 통제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가 콤팩트디스크와 메모리카드로 몰래 들어간다 해도 이를 볼 수 있는 계층은 극소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김일성대 총장까지 지낸 황장엽 씨가 망명했을 때 국제사회는 성급하게 북한의 내부 붕괴를 예상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났으나 김씨 왕조는 이를 비웃듯 3대 세습까지 마쳤다.

문제는 이제 맹방 중국조차 북한의 주동적인 개혁 개방 또는 상향식 압력에 의한 권력구조의 변화 가능성에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의 한 핵심 이론가는 사석에서 “외부의 힘에 의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제재가 됐든, 군사 공격이 됐든, 더 강력한 외교적 압박이 됐든 북을 변화시키려는 힘은 김씨 왕조의 극렬한 반발을 가져올 것이다. 한국은 그때도 지금처럼 북한의 인질이 돼 ‘서울 불바다’ 위협에 가슴을 졸일 것이고, 눈 막고 귀 막힌 북한 주민들은 김씨 왕조의 생명 연장과 자신들의 삶을 맞바꿔야 할 것이다.

우리는 행여나 다른 손님들 눈에 뜨일까 봐 식사하던 식당의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히터에서 나오는 건조한 열기가 주는 답답함만큼이나 벼랑을 향해 달려가는 김씨 왕조를 잡아 세울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답답함이 우리의 가슴을 짓눌렀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국경도시#중국#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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