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그림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홀로그램의 이미지처럼 허상이 아닐까? 영원한 사랑, 죽음 이후에도 더욱 강렬해지는 사랑의 신화는 거짓 희망이 빚어낸 아름다운 착각은 아닐까?
페데르는 어느 여름밤 아내와 애견이 해변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은 가장 매혹적인 바다 그림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여주인과 개가 대자연과 교감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시적이면서 우수적인 분위기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태생인 페데르는 코펜하겐 미술학교의 제자인 마리와 열애 끝에 1889년 결혼했다. 2년 후 부부는 덴마크 최북단의 작은 어촌 마을 스카겐에 정착한다. 당시 그곳은 예술가 마을로 유명했다. 북해와 발트 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스카겐의 바다는 밀도가 달라 두 바다가 선을 그어 놓은 듯이 뚜렷한 경계를 보이는 데다 바다 색깔도 달랐다. 이런 신비한 자연 현상이 예술가들의 창작혼을 자극한 것이다.
두 사람은 덴마크 미술계의 황금커플로 부러움을 받았지만 1905년 이혼한다. 화가인 마리는 아내이며 모델인 자신의 역할에 갈등을 느낀 데다 정신병을 앓는 남편의 병간호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결국 페데르는 이혼 4년 후 세상을 떠났고, 마리는 30년을 더 살았다. 이런 배경을 알게 되면 페데르가 왜 어둠을 푸른색으로 칠했는지, 아내의 뒷모습을 그렸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페데르의 삶과 예술은 황금기였다. 스카겐 예술가 그룹의 지도자가 되었고, 덴마크 최고의 미녀인 아내는 많은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그는 운명이 자신에게 선물한 절정의 순간은 푸른색 어둠으로, 사랑스러운 아내의 눈길로 스카겐의 밤바다를 바라보고 싶은 심정은 마리의 뒷모습에 투영한 것이다. 이 그림은 스카겐의 바다처럼 섞이지 않고 서로에게 부딪치는 파도였던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그 사랑은 김훈이 ‘바다의 기별’에서 말했던 아득하고도 막막한 사랑과도 닮았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