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연애를 부르는 계절이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청춘 남녀의 마음은 달뜬다. 그런데 이 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 타임라인에는 ASKY라는 약어가 자주 등장한다.
“살 빼도 ASKY, 대학 들어가도 ASKY, 직장 잡으면 더 ASKY.”
A.S.K.Y.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특정 영어 단어의 조합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ASKY는 우리말 ‘(애인이) 안 생겨요’의 첫소리를 영문으로 옮긴 SNS 은어다. 반대말은 SKY(생겨요). 요즘엔 GRD ASKY도 나왔다. 뜻은? ‘그래도 안 생겨요.’
트위터에서 해시태그(특정단어 앞에 #을 붙여 그 주제에 대한 글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기호) 검색으로 ASKY 관련 멘션을 찾아보면 이른바 ‘웃기면서도 슬픈’ 사연이 적지 않다.
“내게 친오빠가 있었으면 오빠 친구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풋풋한 로맨스도… ASKY” “나도 일 그만두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화장하고 꾸미고 그러면 생김? ASKY” “트위터에 이렇게 이상형 울부짖어도 ASKY” “노력하면 생길 것 같죠? GRD ASKY”
사실 연애는 젊은층이 많이 사용하는 SNS에서 늘 인기 있는 소재다. 시시각각 ‘당신의 솔로지수는?’ 따위의 연애심리 테스트와 ‘이성을 사로잡는 비결’ 같은 믿거나 말거나 정보가 공유되고, 트위터에서 리트윗하거나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면 연애운이 생긴다는 부적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지난해 말 시끌벅적했던 ‘솔로대첩’에 이어 얼마 전엔 ‘곶감대란’도 있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빈지노’라는 힙합가수가 상대에게 “곶감 좋아해?”라고 묻고 좋다고 할 경우 “우리 곶감 먹으러 상주 갈래?”라고 말하라고 조언한 게 시작이었다. 그 후 타임라인은 ‘곶감 좋아하냐’ ‘상주 가자’는 문답과 곶감 사진으로 도배됐다. 곶감 외에 ‘귤 좋아해-제주도 가자’ ‘딸기 좋아해-논산 훈련소 갈래’ 등의 다양한 과일고백 패러디도 등장했다.
기성세대 중에는 그깟 연애가 대수냐,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과 복잡한 계산이 얽힌 현대사회에서 연애, 사랑과 같은 순수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는 갈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연애에 대해 ‘현대인의 새로운 종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제는 오늘날은 연애 역시도 갈수록 게임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원하는 상대를 선점해야 하고, 적절한 ‘밀당(밀고 당기기)’의 기술도 필요하다. ‘순정’은 사라지고 연애에도 이해관계가 개입된다. 매력 있는 이성이 되기 위해 ‘스펙’도 갖춰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한다. SNS에서 넘치는 연애에 대한 갈구와 자조 이면에서는 갈수록 연애하기 힘든 현실이 보인다. 밸런타인데이가 엊그제 같은데 이틀 후면 또 화이트데이다. 사탕이 넘실대는 거리에서 혼자 ASKY를 읊조리고 있을 청춘 남녀들의 건투를 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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