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세종시 관사는 복층 구조의 196㎡(약 59평) 아파트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펜트하우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박 장관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재정부가 세종시로 이사한 뒤 박 장관이 이 집에서 잔 날은 불과 5일. 박 장관이 없을 때는 박 장관의 보좌관이 주로 머물렀다. 야근하다 서울 가는 기차를 놓친 몇몇 재정부 공무원도 이곳을 애용한다. 이름은 ‘장관 관사’지만 실제로는 보좌관 관사, 야근자용 숙소인 셈이다.
요즘 세종시의 총리 공관은 ‘주말 별장’이라 불린다. 김황식 전 총리는 재임 시절 평일에 거의 이용하지 못한 공관을 놀릴 수 없다는 생각에 주말에 부인과 함께 이곳에 머물렀다. 세종시로 이주한 6개 부처 장차관 관사의 이용률은 모두 이와 비슷하다. ‘재정의 파수꾼’을 자임하는 박 장관은 “부처마다 장차관들의 관사를 따로 마련할 게 아니라 한두 채를 빌려서 필요할 때마다 공동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총리 공관을 제외하고 장차관들은 현지의 아파트를 전세로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전세금은 대부분 2억 원 안팎. 6개 부처 장차관 18명이 한 달에 사나흘 머무는 관사 계약금으로 30억 원 이상의 나랏돈이 묶인 것이다.
정부세종청사에 출근할 때마다 텅 빈 버스전용차로를 보면서도 세금이 줄줄 새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이 길에는 버스와 노면전차(트램)의 장점을 결합한 바이모달트램이 오가야 한다. 대당 가격 19억 원인 바이모달트램은 명품 도시의 명물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시범 운용 중인 2대 모두 잦은 고장으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세종청사로 이전한 재정부에 출입하는 기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에 필요한 135조 원을 정부가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세금을 더 걷지 않아도 세출구조를 조정하고, 낭비되는 예산을 찾아 줄이면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은 게 사실이다.
정부 지출 감소와 감세를 약속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득세는 낮췄지만 정부 지출은 줄이지 못했다. 하원의원이었던 30대의 데이비드 스토크먼 의원을 ‘관리예산처장’으로 발탁해 불요불급한 정부 예산에 칼을 대게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는 나중에 “쓸데없는 예산을 줄인 게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예산만 잘랐다”라고 고백했다. 이미 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는 예산을 줄이는 건 세금을 더 걷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새 정부가 이명박 정부 때처럼 부처별로 재량 지출의 10%를 줄이라고 한다면 스토크먼의 전철을 밟을 소지가 크다. 어떤 공무원이 장관 관사를 없애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 텅 빈 세종시 관사를 보니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크먼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힘 센 기관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배정된 예산부터 줄이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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