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철학을 공유한 인사는 ‘코드 인사’와 다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3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장 인선과 관련해 장관들에게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지시했다. 청와대는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남았더라도 전문성과 적절성 여부를 다시 검토할 것이라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대해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된다”며 전문성을 제1의 인선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전문성을 중시하겠다는 뜻은 공감하지만 지금의 말과 견주어 볼 때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인사를 할 테니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에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대통령의 지시를 수행하는 장관이나 대통령 비서관들은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임명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장이 꼭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정치색에서 탈피해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춘 사람이 적임자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승리를 도운 사람들을 기용하기 위해 국정철학이라는 수사(修辭)를 꺼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때의 ‘코드 인사’와 뭐가 다른지 설명이 필요하다. 민주통합당은 “벌써부터 정실 인사,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정실 인사, 낙하산 인사는 정권 자신을 해친다”(2006년) “이 정부 들어서 이념적, 편향적으로 코드인사를 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소외시켜 국력을 낭비했다”(2007년)며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를 비판했다. 당선인 시절에도 “낙하산 인사가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인사철학이 실제 공기업 인사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전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임원추천위원회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무늬만 공모제’라고 비난받아온 공공기관장 공모제를 수술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도 사전에 기관장을 내정해 놓고도 절차적인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공모제라는 형식을 빌릴 생각이라면 과거 정부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다. 공모제를 보강해 낙하산 인사라도 능력과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장관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새 정부의 내각 인선을 보며 박 대통령의 인사 원칙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 국민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도 과거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선거공신들을 마냥 외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기업 인사는 도덕성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코드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임명된 공공기관장이 노조에 ‘낙하산 인사’라는 약점이 잡혀 방만한 경영을 하는 일이 이번 정권에서도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국정철학#코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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