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행복기금은 좋지만 모럴해저드가 걱정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3일 03시 00분


금융위원회가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은행과 카드회사,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여러 곳에 빚을 진 저소득 다중채무자의 원리금을 줄여주기로 했다.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1호 공약이었다. 지원 대상은 지난해 8월 말 이전에 빚을 연체한 사람 중에서 채무 조정 이후에 적극적으로 빚을 갚으려 한 사람으로 제한한다. 정부 지원을 노리고 일부러 연체한 경우는 제외하겠다는 의미다.

그래도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논란은 남는다. 나라가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하면 빚을 갚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금 출범을 기다리며 빚을 안 갚는 채무자가 늘어난 것은 당연하다. 이자만이 아니고 원금의 일부까지 탕감해주는 것도 논란거리다. 2003년 신용카드 위기 때도 대책 발표를 앞두고 연체율이 높아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농어촌부채를 탕감해줬으나 효과는 미미했고 ‘농협 빚은 안 갚아도 된다’는 풍조를 조장했다. 채무자 중에는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대출 받아 집을 산 사람도 많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 중 상당수가 그렇다. 투자 실패에 따른 빚까지 줄여주는 건 곤란하다.

채무자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도 우려된다. 부실채권을 나라가 인수해주겠다는데 어떤 금융기관이 대출심사를 까다롭게 할 것인가. 이미 외환위기 때 확인된 사실이다. 대출 담당자는 ‘신용이 떨어지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 대출해주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생색내기 좋고, 사례비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기금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는 조건이 까다로워야 한다. 우선 채무자의 소득 수준, 재산에 대한 충분한 정보의 확보가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지원기준을 꼼꼼하게 정하고, 연체기간에 따라 혜택에도 차등을 두는 정교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수혜자의 의무 이행을 점검하는 사후관리는 필수다. 뼈를 깎는 자구책이 먼저이고 ‘먹튀’를 용인해선 안 된다.

어렵지만 성실하게 빚을 갚는 사람의 부담을 줄여주는 역차별 해소책도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탕감을 기대하면서 ‘일단 버티자’는 사람이 늘어난다. 기금 자체의 부실화도 문제다. 탕감 받은 채무자들이 나머지 빚을 갚지 않으면 세금을 더 넣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가 재정이 버틸 수 없다. 현재 가계빚은 국내총생산(GDP)의 86%에 이르는 1000조 원 규모로 한국경제의 폭탄이다. 국가적 구제가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그러나 엉성한 빚 탕감은 모럴해저드를 일으켜 금융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행복기금은 양날의 칼이다.
#국민행복기금#모럴해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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