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3차 핵실험 이후 연일 전쟁 위협 발언을 쏟아내는 북한을 보면서 든 의문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나 정승조 합참의장이 골프장 등 엉뚱한 곳에 갔으리라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그들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 북한의 의도와 목적, 우리 군의 대비 등에 대해 설명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어느 군 고위 관계자가 익명으로 기자들과 만나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나 그 내용이나 방법이 적절하지도, 충분해 보이지도 않는다.
왜 최고 지휘관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가. 북한이 어떤 위협을 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의 강한 정신력을 믿기 때문인가. 아니면 심드렁하기만 한 국민의 안보 불감증에 군도 전염되었기 때문인가.
전쟁 또는 국가 비상상황을 타개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가 절대 중요하다. 군사력의 중요한 원천은 국민 정서이다. 국민의 애국심과, 국민 스스로 참여하는 의지가 바탕이 되는 국가의 의지력 없이는 어떤 군사력도 한계를 가진다. 전쟁은 정치 행위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라면 국민에게 위기 상황의 정확한 실상과 함께 대응방안의 목적을 알려야 한다.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등 최고 지휘관들은, 그 대응방안이 성공하려면 국민이 대가를 치러야 하나 그것을 국민들이 기꺼이 수용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는 군 수뇌부의 임무이자 의무이다.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고 국방비를 부담하는 국민에 대한 기본 예의이다.
그러나 한국의 군 수뇌부는 국민 앞에 나서는 것을 매우 꺼린다. 오죽하면 국민이 “미국의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 얼굴은 알아도 한국 장관이나 의장은 모른다”고 말하겠는가. 2010년 일어난 북한의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은 우리나라 군대가 국가 비상상황 시 국민과의 소통에 대해 얼마나 허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게 해 주었다. 천안함 폭침 이후 이상의 합참의장은 단 한 번도 국민 앞에 나서지 않았다. 합참의 준장이 기자회견에서 설명했을 뿐이다.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갔으나 사태 발생 사흘 뒤였다. 연평도 포격 때도 한민구 합참의장은 기자회견 등을 열어 국민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 결과는? 천안함 폭침의 경우 그 원인을 두고 온 사회가 극심한 분열에 시달렸다.
미국을 보자.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테러가 발생했다. 10시간 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헨리 셸턴 합참의장은 토머스 화이트 육군장관, 칼 레빈 상원 군사위원장 등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혼란에 빠진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체 없이 국민 앞에 선 것이다. 그 2시간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을 갖고 테러분자들의 공격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정부와 군의 대응조치를 설명했다. 결국 미국 정부와 군대는 국민의 애국심을 이끌어 내 강력한 국가통합을 이루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발생 20여 일 뒤 대국민 연설을 했다).
미국의 군 수뇌부는 늘 국민과 함께 호흡한다. 2월 3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은 당시 국방장관인 리언 패네타와 함께 텔레비전에 나가 40여 분 동안 군대의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미국의 국방장관은 민간인이 임명되므로 그렇다고 치자. 합참의장은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벌이는 전쟁 상황뿐 아니라 군대에 관해 폭넓고 자세하게 국민에게 설명한다. 뎀프시 의장은 의회 증언 이외에 수시로 기자회견을 열고 연설을 한다. 그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활용한다. 2011년 리비아 공습 때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은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텔레비전 인터뷰를 따로 가져 상세한 전황을 국민에게 알려주었다. 콜린 파월 합참의장은 4년 동안 665회의 기자회견, 인터뷰, 연설, 의회증언 등을 가졌다. 이틀에 한 번꼴로 국민 앞에 나아가 군대를 설명했다.
합참의장만이 아니다. 1991년 1차 걸프전쟁을 지휘했던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은 상세하고 솔직한 전황 브리핑으로 일약 세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가 전쟁 동안 가진 27차례 기자회견의 알맹이만을 담은 비디오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재 육군참모총장인 레이먼드 오디어노 대장은 이라크전쟁의 연합군 총사령관 때 중동 등 세계 각국 언론과 100여 회의 인터뷰를 했다. 사단장으로 사담 후세인 생포를 지휘했던 그는 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전투의 승리뿐 아니라 미국 여론은 물론이고 세계 여론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육군대장 시절 “언론을 꿰뚫고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여론을 중시했다.
미국의 군인들이 원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에는 3대 교육 목표인 의무, 명예, 조국 이외에 ‘언론에 대한 증오’가 4대 목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군인들은 언론을 싫어했다. 베트남전쟁에서 언론 때문에 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바꿨다. 언론을 피하는 것은 바로 국민을 피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미국의 2012년 국방예산은 7111억 달러, 중국의 5배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쓰면서 군대를 유지하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벌이려면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군인들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통감했던 것이다.
전시든 평시든 군대의 생존과 발전은 국민의 깊은 인내와 이해 속에 이뤄진다. 세계 12위 수준의 국방비를 들여 60만 병력을 유지하는 대한민국에서 군의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지지와 존경, 제도적 합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야 더욱 거세질 병역 기간 단축이나 모병제 도입 주장, 국방비 관련 세금 부담에 대한 저항과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육군대장 출신들이 국정원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되자 많은 국민이 걱정을 했다. 오랫동안 군사정권 아래 형성된 왜곡된 군사문화 탓에 그들이 국민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군 수뇌부가 늘 국민을 피해 온 결과다.
이번 북한 사태에 대해서는 군 수뇌부가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이 전쟁은 지지하지 않더라도 군대는 지지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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