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78>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메리 올리버(1935∼)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간다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어린이의 순수함이 예쁘게 그려져 있다. 이 시의 화자, 참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네! 어린이가 이렇게 속 편하게 살아도 되는 환경이 부럽다. 그런데 우리 세대 사람들은 어렸을 때 비슷하게 행복한 여름방학을 보냈다. 개학을 한 이틀 남기고 밀린 방학숙제를 하느라 낑낑거릴 정도로 펑펑 놀았었지. 우리 인생의 아르카디아인 초등학생 시절의 여름방학! 요즘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는 영원히 갈 수 없는 유토피아다. 어른의 간섭 없어도 스스로 다잡아 방학 기간 공부 계획을 세우는 어린이도 있단다. 만약 엄마 아빠가 방학에는 ‘그동안 배운 걸 잊’고 놀라고 권한다면 오히려 징징거리겠지?

어느 철학자인가, 하느님이 인간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생애의 중간도 아니요 끝도 아니요, 꼭 앞에 두셨다고 투덜댔었지. 지금 어린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어디 있을까!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늙어지면 못 노나니.’ 아주 오래전에 이런 가사의 유행가를 흥얼거린 기억이 난다. 젊어서 놀기를 바라지는 못할지언정 유년시절에는 방학에라도 자연 속에서 뒹굴며 오직 놀아야지! 우리 어른들도 이번 주말에는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을 싹 잊어버리고 어떻게든 놀아보세!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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