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딸을 둔 지인이 지난주 연락했다. 학부모 면담에 갔더니 담임이 돈을 요구하는데 어찌해야 하느냐며. 1년간 내야 하는 액수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다달이 나눠 낼지, 분기별로 낼지 결정해 ‘편한 대로 하시라’고 했다는 얘기.
교육담당 기자라서 도움이 될까봐 내게 물었을 터인데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다른 엄마들은 한데?”라고 물었을 뿐이다.
지인은 같은 담임을 거친 엄마들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노라 전했다. “워킹맘은 일시불로 내도 된다” “봉투에 넣지 말고 명품 지갑에 넣어 드려라”라는.
3월 신학기. 어김없이 학부모들이 촌지 문제로 고민한다. 예전에 비하면 촌지가 많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카더라’ 통신이 아닌 이상 실제로 촌지를 줬다는 학부모나 이를 받았다는 교사는 그리 많지 않다.
준 사람, 받은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촌지에 얽힌 얘기는 점점 괴담 수준이 되고 있다. 극소수 교사가 황당한 상납을 받는 바람에 그렇다. 최근 충북 A중학교에서는 계좌번호가 적힌 명함을 학부모들에게 돌린 교사가 등장하지 않았나.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황당한 상납을 하는 학부모도 있다. 지난해 서울 A초등학교에서는 소위 ‘명품백 그룹’에 끼지 못한 학부모가 왕따를 호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같은 반 엄마끼리 4∼6명씩 짝을 지어 세 그룹이 담임에게 고가 백을 선물하는데 자신은 어디에도 못 끼어서 서럽다는 요지다.
몇몇 학부모끼리는 소위 시세표나 족보도 공유한다. A 교사는 정말로 안 받는다, B 교사는 한 번은 되돌려보내니 다시 보내야 한다, C 교사는 작년에 최대 얼마까지 받더라는 식. 학부모들은 이를 ‘고급 정보’로 여긴다.
뭐니뭐니해도 제일 나쁜 건 적극적으로 손을 벌리는 일부 교사다. 다만 알아서 기꺼이 공범이 되는 학부모도 존재하기에 촌지가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는다.
교사가 마다하는데도 촌지를 적극적으로 갖다 바치는 학부모가 있다. 내 자식만 더 잘 챙겨달라는 이기심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런 이들이 ‘자식이 볼모인데 어쩌느냐’며 피해자인 양 하는 건 꼴불견이다. 동료 교사가 촌지를 챙기는 걸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하는 교사 역시 문제다. 방조범이라 할 만하다. 내부 고발이 중요한 건 학교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제는 의약품 리베이트처럼 학교 촌지에도 쌍벌제를 도입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현재 교원징계규정은 금품을 받은 교사를 처벌한다는 원론적 수준이다. 그나마 미약한 징계 수위는 시도별로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한다.
촌지근절법안이 떠오른다. 2006년 진수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했다. 돈을 준 학부모는 실형, 받은 교사는 50배의 과태료를 물리자 했으나 교육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7년 전 유야무야된 법안이 아직도 생각나는 현실이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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