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차동엽]개혁의 십자가 짊어진 새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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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6일 03시 00분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
중세 가톨릭교회가 정교(政敎)유착의 특권을 향유하며 총체적으로 탈복음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을 때(정확히 1207년), 청년 프란치스코는 허물어져가던 성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밑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 교회를 수축(修築·보수하고 건축)하라.”

그는 이를 곧이곧대로 알아들어 맨손으로 흙과 돌을 들어 나르며 성당을 보수한다. 하지만 이 말씀은 몰락 위기에 처한 중세 교회를 위한 ‘세기적’ 명령이었다. 이를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탁발 수도회를 창설하여 위대한 개혁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그가 표방한 것은 복음으로 돌아가 청빈, 겸손, 소박의 삶을 몸소 사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교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던 세 가지 병폐인 부, 권력, 사치에 대한 명처방이었다. 그 파급력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힘으로 밀어붙인 무력 혁명도 아니요, 센세이셔널한 사상으로 새 시대를 연 이데올로기 혁명도 아닌, 그저 소박한 실천운동이었지만 세기를 거듭할수록 파장은 기하급수적으로 거세어져 갔다.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신임 교황이 자신의 공식 명칭을 프란치스코라고 정한 것은 13세기의 저 기념비적 사건을 연상시킨다. 예수회 출신인 그가 굳이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택한 것은 바티칸 전문가 존 앨런이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놀라운 결정”임에 틀림없다. 만일 그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에 내장된 그 가공할 함량을 직관하고서 이 이름을 빌렸다면, 그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를 향후 교황직 수행의 지평으로 삼지 않았을까 기대된다.

첫째는 가톨릭교회의 원대한 개혁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개혁’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교회의 모든 스펙트럼을 아우르면서 수세기에 걸쳐 일어난 쇄신의 단초를 열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 형제들을 동지로 얻었고, 숱한 추종자들을 협력자로 얻었다. ‘제2의 예수’라 불렸을 만큼, 성 프란치스코가 일으킨 운동의 여운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증폭되어 갔다. 신임 교황이 이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앞으로 수세기를 지속할 새로운 개혁을 출범하겠다는 엄중한 사명을 선출 소감 일성으로 천명한 셈이다.

둘째는 그것을 이루는 방법으로서 생태학적 접근법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사명이 유장했음에 비해, 그의 접근법은 의외로 단순 소박했다. 그는 단지 예수의 복음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다. 보잘것없는 이들을 돌보고, 원수를 사랑하고,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보듬어 주고…. 요즘 사회운동가들이 볼 때, ‘이래 가지고 무엇을 이루겠나’ 싶을 만큼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얼’은 모든 것에 침투해 소리 없이 변화의 싹을 틔웠다. 신임 교황의 프로필을 일별해 보면, 그 역시 타고난 생태학적 영성가임을 금세 알아채게 된다. 직접 요리를 즐기고, 외출할 때도 자동차를 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시간 나는 대로 빈민가를 방문하고 사회에서 지탄받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봉사를 즐겨 했다고 하니 말이다.

800년 전에 비할 때 오늘의 시대상황은 천지개벽하듯 바뀌었지만, 개혁 요청의 수위는 거의 동급이다. 교회 안팎에서 밀려오는 변화의 탄원은 이제 한계선에 가까워지고 있다. 주교의 민주적 선출과 주교 임기제, 사제 독신제 폐지,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의 성사 허용, 여성사제 서품 허용, 인공피임 재고 등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아직 누구도 언급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안들이 구미 교회에서는 연일 공론화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전 세계 인권과 평화의 최후 보루로서 바티칸의 역할 또한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명령 앞에 신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향후 영적 정치적 행보에 흥분과 기대가 쏠린다. 40대를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거니와, 언론에 뜬 첫 사진을 보는 순간 ‘이 분, 일 한번 크게 내시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 기대가 괜한 바람은 아닐 듯하다.

차동엽 인천가톨릭대 교수
#교황#호르헤 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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