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3>그녀의 속내…여자들은 왜 돌려 말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6일 03시 00분


남편은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워 TV를 본다. 퇴근이 늦은 아내가 옷을 갈아입으며 그에게 묻는다. “배고프지 않아? 전기밥솥에 밥 있고, 냉장고에 반찬도 있는데….” 남편이 대답한다. “뭐 그냥.”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며 푸념을 한다. “피곤한데 일은 많네. 청소에 세탁에…. 내일은 일찍 출근해서 회의 준비도 해야 돼.”

남편은 식사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설거지를 하는 아내가 말을 걸지만 대꾸하지 않는다. 한참 후 아내는 안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다. 남편이 이불을 들추며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는 순간 베개가 날아온다.

결혼한 남자들의 흔한 착각이 ‘아내를 잘 안다’는 확신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는 게 없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고사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별문제 없으니까 잘 사는 것 아니냐”는 태도다. 이런 태도로 인해 부부싸움 때마다 코너에 몰리지만 왜 당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한다.

여자의 속마음을 파악하려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말의 뒷부분에 핵심이 실려 있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용건부터 꺼내는 남자의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아내가 “배고프지 않으냐”고 남편에게 물은 것은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의미다. 또한 “전기밥솥에 밥이 있고 냉장고에 반찬도 있다”는 언질에는 ‘누워 있지만 말고 식사 준비를 도와달라’는 부탁이 담겨 있다. 푸념도 같은 맥락이다. 아내의 속마음을 남자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 오늘 피곤하거든.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고. 그러니까 청소랑 세탁을 분담해줘.’

지금 장년층 남성들의 시대까지만 해도 이런 여자들 특유의 표현법과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해도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인내’라는 두 글자로 결혼의 울타리를 지켜내던 시기였다. 뒤늦게 황혼이혼에 직면하는 경우가 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남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특유의 대화 방식을 통해 속마음이 구름에서 해가 나오듯 간간이 드러나는 대목을 잡아챌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싶기도 할 것이다. 왜 속 시원하게 말을 하지 않는지.

하지만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 역사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왜 짜증나게 구느냐”고 신경질을 부릴 일만은 아니다. 여성들은 직접적인 표현이 초래할 수 있는 반감의 위험에 오래전부터 예민했던 것이다.

한상복 작가
#푸념#여자#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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