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권노갑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8일 03시 00분


“민주당 뿌리는 하나다, 지금 최대 문제는 계파 정치…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들로부터 버림받는다”

여든을 훌쩍 넘긴 민주통합당 권노갑 고문의 얼굴은 맑고 건강해 보였다. “매사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공부에 집중하는 게 건강 비결”이라는 그는 지난 2년 동안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석사과정을 다니며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여든을 훌쩍 넘긴 민주통합당 권노갑 고문의 얼굴은 맑고 건강해 보였다. “매사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공부에 집중하는 게 건강 비결”이라는 그는 지난 2년 동안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석사과정을 다니며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대화와 타협은 정치의 기술이라기보다는 본질에 가깝다. 정치 실종에 대해 국민들의 소리 없는 질타가 여야 모두를 향하고 있는 요즘이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민주통합당에 어떤 조언을 해줄까. DJ 생전 ‘그의 분신’으로 불리던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83)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다. 가까운 지인을 통해 인터뷰 청을 넣었지만 그는 거절했다. 민주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미래를 모색하는 와중에 언론과 만나 비판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원로다운 무게감과 신중함이 느껴졌다. 기자는 “인터뷰 안 해도 좋으니 일단 만나고 싶다”고 청했다. 첫 만남은 13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였다. 5월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석사과정 졸업을 앞둔 그에게 “영어 공부 등 근황만 이야기한다”는 조건으로 인터뷰 약속을 받아냈다. 이튿날 다시 만났다. 정해진 시간은 30분. 기자와의 약속을 전후로 민주당 의원 등 당내 고위 관계자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당내 정신적 지주로서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두 번째 만남에서 “더 여쭤볼 것이 많다”는 청을 그가 다시 받아줬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세 번째 만남에서 이뤄진 셈이다. 토요일이던 16일 오후 4시였다. 그의 마음이 열린 것을 확신하고 민주당의 현 상황을 말머리로 삼았다. 》
정치 지도자는 국민 위해 죽을 각오 해야

―민주당 지도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민주당의 앞날, 서울 노원병 안철수 후보에 대한 대응. 이게 현재 우리 당 앞에 놓인 과제다.”

―권 고문의 견해는 어떤가.

“민주당은 대선을 도와준 안 후보에게 고마움과 배려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안 후보가 나온다면 별도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신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향후에도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전폭적으로 도울 수 있다. 그가 무소속으로 나간다 해도 협력이 전제된다면 민주당은 다른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후보를 내야 한다. 안 후보에 맞서겠다는 것이 아니라 공당(公黨)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민주당 내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민주당 내에) 국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는 것 같지만 지도자는 당을 리드하는 것뿐 아니라 5년 후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까지 포함하는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인재는 많다. 문재인 전 후보도 있고, 손학규 박원순 송영길 안희정, 이런 사람들 키우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사람이다’ 하는 느낌은 없다.

“본인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 자치단체장을 하더라도 당이 어려울 때는 당을 위해 의견과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것을 국민들이 보면서 ‘저 사람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 사람에게 눈길이 가게 되어 있다.”

―개별적으로 당내 인사들에게 조언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누누이 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에서부터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거다. 얼마나 공부를 했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교도소 생활은 어땠는지, 책은 얼마나 봤는지….”

그는 “정치 지도자라면 목숨을 거는,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타국에서 독립투쟁에 헌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목숨 내놓고 쿠데타 한 거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단식 투쟁하면서 목숨을 걸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잔잔하던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있었다.

“정치인들이 반성을 안 한다. 어제도 상임고문 회의에서 말했는데 정치인들이 지금 ‘안철수 현상’이 왜 나왔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다. 정치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성찰해야 한다. ‘안철수 현상’을 벗어나고 민주당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각성하고 책임질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 의원직은 갖더라도 잠잠하게 있다가 다시 국민들이 민주당에 기대를 주는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다시 DJ를 언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에 YS하고 단일화를 못해 노태우 전 대통령한테 내준 뒤 책임지고 물러났다. 국회의원 출마 않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시 평화민주당을 1당으로 만들었다.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또 떨어져 정계에서 은퇴하고 영국으로 갔다. 다 포기하고 간 거다. 남은 생(生)은 남북관계, 통일 문제만 하겠다고 했지만 한국 정치 돌아가는 게 영 아니다 싶으니 다시 돌아온 거다. 그때 다들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언론도 99%가 반대했다. 온갖 비난을 감수했다. 결국 정권을 바꾸지 않았나. 정치인이라면 그런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나는 책임 없다’며 모른 척하면 안 된다. 왜들 마음을 크게 안 먹나. 말로만 사즉생(死則生) 하지 말고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안철수 씨, 정치하고 싶으면 당에서 해야


―DJ가 살아 있다면 민주당에 어떤 조언을 할 것 같나.

“당을 쪼개지 말고 모두들 민주당으로 들어와 역사와 전통을 살리면서 자기 철학과 비전을 융합시켜 당을 발전시키자고 할 거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는 정치인이 해야 한다”고 했다. 안 후보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교수 장군 관료, 숱한 직업의 사람들을 정계에 입문시켰다. 그런데 안목이 제한되어 있다. 눈 가리고 뛰는 경주마처럼 경주할 때는 잘하는데 다른 건 잘 모른다. 정치는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거다. 국민의 애환 고통, 이런 것을 알고 갈등을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도 전문직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와 정치하겠다? 이건 국민들의 시야를 흐리는 일이고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정치하고 싶다면 당을 선택해야 한다. 새누리당을 가든지 민주당을 가든지 통합진보당을 가든지.”

―정당 설립은 자유 아닌가.

“철학이 비슷한데 구태여 (당을) 만들 이유가 있나. 기존 정당에서 그 철학을 같이 구현해서 같이 가야지. 자기 철학을 융합시켜서 당을 더 번영시키고 확대시키는 게 정치적인 원칙과 상식에 맞다.”

화제를 ‘현재 권력’으로 돌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잘하고 있나.

“기대가 컸다. 아버지, 어머니가 불행하게 돌아가신 그 쓰라린 경험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왜 깨달음이 없었겠나. 청와대 안주인 역할도 해봤고. (청와대) 나와서는 얼마나 고생했나. 정치를 결심할 때까지 얼마나 눈물겨운 시절이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사람도 잘 쓰고 정치를 잘할 거라 믿었다. 마트도 가고 벤처기업, 학교도 가면서 생활 전선을 돌아보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부조직법 문제라든가 장관과 청와대 비서진을 임명하는 것을 보니 너무 독주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하는 일이 최선이니 왈가왈부하지 마라’ 하는 느낌이다. 국회를 너무 무시하고.”

그는 “무엇보다 대통령 옆에 사람이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속 터놓고 상의할 만한 사람이 곁에 없어 보인다. 옆에서 누구 하나 바른말 못하는 게 걱정이다. 나도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있는데 박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옆에서 옳은 말을 해드려야 하는데 못한다는 거다. (대통령이) 좀 부드러워지면 좋겠는데.”

―친박(親朴) 인사 배제는 신선해 보인다.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안 된다. 어떤 정권이든 자기 사람을 써야 한다. 친박이 국무총리를 한다든가 하는 것은 안 되지만 장관 하나 정도는 있을 수 있다. 물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능력이 있는데 친박이라고 배제하면 역차별 아닌가. 미국도 대통령이 바뀌면 자기 군단이 다 들어간다. 언론도 그것에 대해 너무 이야기하면 안 된다. 코드 인사는 필요하다. 대통령도 안에서 소통을 해야 한다. 다 잘라버리면 누구하고 이야기하나. (재임) 5년은 짧다. 기다릴 수가 없다.”

―DJ 대통령 시절에는 바른말을 많이 하셨나.

“당연하지. 권노갑이 부통령이니, 제2의 김현철이니 하는 이런저런 소리 다 들어가며 할 말 다 했다.”

―그때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

“얼굴 기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 들어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A라는 사람 장관 시켰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물었을 때 내가 아니라고 하면 왜인지 묻고 내가 뭐라 설명하면 ‘미처 몰랐네’ 이랬다. 내 주장을 안 받아들일 때에는 ‘이러이러해서 하는 것이니 이해를 하게’ 했다. 그러면 나도 수긍을 하고.”

―(DJ의) 분신, 비서라고 해서 권 고문은 ‘예스맨’인 줄 알았다(웃음).

“절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식이었다. 나는 비서로 그 양반을 모신 게 아니었다. 내겐 아버지였고 형님이었고 정치적 동지였다. 주종 관계가 아니었다.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대통령 때도 허물없이 대해 주셨다. (박 대통령도) 믿고 속마음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객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사심 없이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말하는 사람이 없다.”

여야, 대립 빨리 끝내 국민 편안하게 해줘야

권 고문과 DJ의 인연은 19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강원 인제 보궐선거 때 직업(목포여고 영어교사)까지 때려치우고 그를 돕는다. 이후 권 고문은 DJ의 조직과 자금을 총괄하는 2인자로 불렸다. DJ가 일본과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와 권 고문 수감 기간을 제외하고 보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권 고문과 DJ처럼 특별한 인연을 박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원로들을 만나면 된다. 새누리당에 훌륭한 원로가 많이 계신다. 기탄없이 말씀해 달라 하면 왜 안 하시겠나. 바른말 한다고 대통령이 멀리한다면 국민들이 누구를 욕하겠나. 대통령은 도량과 포용이 있어야 한다. 배려, 사랑, 정(情)이 있어야 한다. 누가 미워도 ‘식사 한번 하자’고 불러 다독거려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점점 꼬여서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런 통합의 정치는 지금 민주당이야말로 필요해 보인다.

“특정 계파가 중심이 되어서 포용을 못하고 있다. 옛날 우리는 계파가 하나였다. 오직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족을 위해서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 이것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계파 중심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민주당의 가장 큰 폐단이다. 50년 만에 평화적,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을 배출한 당인데, 그 정권에 의해 배출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그게 이 당의 맥을 끊고 계파 갈등을 일으킨 치명적 과오다. 당시 당사자들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른바 ‘노무현의 사람들’이 누군가. 다 국민의 정부 때 발탁된 사람이다. 이해찬 전 총리도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인 13대 때부터 국회의원이 되어 신민당 민주당 국민회의를 거쳐 국민의 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한명숙 전 총리도 새천년민주당 시절인 16대 국회 전국구로 들어와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부 장관을 지냈다. 그 사람들도 자신들이 범(汎)동교동계라는 것을 부정 못한다. 사람은 근본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당에서 대통령 된 거 아닌가. 뿌리가 하나지 뭔가. 거기서 무슨 파를 나누나. 북한 동포까지 끌어안아야 하는 마당에 왜 원수같이 살아야 하나.”

그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5·4 전당대회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당 대표를 추대하고 모든 걸 다수결로 하면 된다. 당내 갈등은 언제나 있다. 대화와 통합 과정을 거쳐 민주당의 전통 노선을 따라가면 된다.”

―전통 노선이란 무엇인가.

“중산층, 서민, 약자를 위한 정치 아닌가. 통일 문제는 이미 집권 여당으로 10년 동안 해온 경험을 살리면 되고. 다만, 종북 세력하고는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종북 세력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 민주당이 지난 50년 동안 지켜온 노선이자 전통이다.”

그는 “민주당은 호남이 뿌리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호남 사람이 얼마나 많나. 경남, 경북, 강원, 제주 할 것 없이 호남인이 1000만 명이 넘는다. 그 1000만 명의 뿌리가 바로 민주당의 뿌리다.”

―그게 바로 지역주의 아닌가.

“지역감정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중산층, 서민, 노동자, 농민, 호남 이것이 우리 뿌리다.”

그는 민주화 투쟁을 포함해 비자금 사건 등으로 총 8년의 옥고를 치렀다.

―지난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197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김대중과 손을 끊으라’며 회유할 때였다. 유학도 보내주고 돈도 주고 포항제철 이사도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는 중앙정보부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통닭구이’ ‘물고문’도 당했지만 “고문보다 유혹이 더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였다. 하지만 넘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 다음 힘들었던 일은….

“현대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할 때였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사적으로 인연이 없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신(神)은 없다’는 편지를 썼다. 일주일 정도 지난 2007년 1월 4일 추기경께서 영하 17도 추운 날, 직접 병원에 오셔서 이렇게 말하셨다. ‘하느님은 계십니다. 내가 하느님을 대신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권 고문님은 죄가 없습니다.’ 나는 그날 병원에서 영세를 받았다.” 권 고문은 이후 추기경이 돌아가실 때까지 매년 정초 세배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한때 ‘동교동 금고’로 불리며 “당에 들어오는 정치자금을 관리하고 현금 액수 순으로 전국구 순위 배정을 하고 공천받은 사람들이 출마할 때 돈을 나눠주는 일들을 했다”(2003년 3월 신동아 인터뷰).

―권 고문을 부패 정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돈 없이 정치를 할 수 없는 시절이 있지 않았나. 특히 야당은 가난했다. 나는 한 번도 부끄러운 돈을 받은 적이 없고 나 자신을 위해 쓴 적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닐 수 있는 거다.”

2000년 12월 2일 정동영 최고위원은 대통령 앞에서 당시 최고위원이던 권 고문에게 사퇴를 요구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권 고문은 일주일 후 물러났다. 그는 정 위원을 정계에 입문시킨 당사자다. 권 고문은 2003년 신동아 인터뷰에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심정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을 용기로 생각하는 인간 됨됨이에 환멸을 느낀다”고 했다.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을 텐데….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다들 잘못했다고 한다. 그 사람들도 다 포용했다. 어제도 만나 이렇게 격려했다. ‘나는 인연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여러분에게 정치를 시킬 때 훌륭한 정치인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 기대는 지금도 똑같다.’”

―미운 마음은 없나.

“왜 없겠나. 하지만 나를 위해 참는다. 분하고 마음이 상하면 잠을 못 자고 화가 끓는다. 내 몸이 나빠진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잊으려고 한다.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도 다 용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너무 밉고 증오스러울 때가 있었지만 그분의 장점도 있었다.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은 과오이지만 산업화의 기반을 만들어 놓은 분 아닌가.”

그는 2008년 영어 동시통역사를 꿈꾸며 늦깎이 유학(미국 하와이대 동서문제연구센터)을 떠났다가 DJ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6개월 만에 급히 귀국했다. 그리고 국장 때 사실상 상주를 맡았다.

―DJ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답 대신 양복 윗옷 주머니에서 오래된 만년필을 꺼냈다.

“내가 하와이로 공부하러 갈 때 주신 거다.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보라면서 말이다.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에는 의식이 없으셨다. 통곡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 그분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분이 대통령 된 것만 해도 영광스럽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대한민국을 민주·인권국가, 정보기술(IT) 강국, 세계적인 문화국가로 만들었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초석도 놓았다. 그분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자랑스럽다.”

기자는 기사를 쓰다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15일 회의에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에게 ‘입장 바꿔 생각해 우리가 정권을 잡았어도 나름대로 정부조직을 바꿨을 거다. 그러니 어느 정도 양보해서 이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언론의 공정성 문제는 별도 합의를 하고 국민 입장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든 잘되었다. 여야 대치 상황을 빨리 해결해서 국민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살아났으면 한다.”

진정한 정치의 부활을 바라는 정치 원로의 말은 기자의 바람과 다르지 않았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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