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1년 후의 100만 원’과 ‘366일 후의 101만 원’ 중 무엇을 택하겠는가. 이는 ‘하루금리 1%’꼴이다. 연리로 환산하면 1.01³65-1=36.783, 즉 3678.3%가 된다. 어마어마한 수익률로 이런 셈법에 밝지 않은 사람도 대개 후자를 고른다. 그런데 ‘오늘 100만 원’과 ‘내일 101만 원’ 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실험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오늘 100만 원을 택했다. 금융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이 ‘인간이 눈앞 유혹에 얼마나 약한가’에 이르면 바로 의문이 풀린다. 저축 금연 다이어트 아침조깅이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눈앞의 유혹에 참 약한 인간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강제저축 강제보험 제도를 시행한다. 한국엔 국민연금 등 4대 보험과 퇴직금 제도가 있다. 개인연금은 ‘스스로 선택한’ 강제저축이다. 저축은 개인의 미래는 물론이고 국민경제에도 매우 중요하다. 2.7%로 떨어진 가계저축률은 성장동력 위축의 주요 요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소비왕국, 신용카드왕국인 미국은 경기부양이 필요하면 빚 쓰기를 권한다. 일본도 비슷한 정책이다. 그러나 기축통화는커녕 주요통화국도 못 되는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저축=투자+순수출(수출―수입)’의 국민계정 항등식에 따라 저축이 줄면 투자와 함께 순수출이 준다. 경상수지 적자요인이며 외환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그게 아니어도 부채에 의한 성장보다 자본에 의한 성장이 훨씬 효율적이며 건강하다.
이명박 정부는 햇살론, 미소금융, 새희망홀씨 등 3대 서민금융상품을 도입했다. 취약계층의 금융기회를 확대해 악덕 사채(私債)로부터 보호하며 재활을 돕자는 취지였고 성과가 있었다. 부작용이라면 빚내기가 쉬워졌다는 것. 낮은 금리로 갈아타는 데 많이 활용했다. “행상을 시작하겠다”며 돈을 빌려 트럭을 산 뒤 바로 트럭을 팔고 잠적하는 사람이 나오는 등 연체율도 9%대로 매우 높다. 그새 가계부채 총액은 1000조 원 규모로 늘었다. 한국경제에 최대 복병이다.
물론 가계부채 사태의 진짜 주범은 빚을 내서 집에 투자한 이른바 ‘하우스 푸어’로 현 상황은 부동산침체와 깊이 얽혀 있다. 파산 위기의 한계(限界)가계에 대해서도 소득창출 및 자산형성 기회를 주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다. 분배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 기저에 깔아야 하며 근본대책은 역시 일자리다. 그렇다고 서민금융을 가벼이 여기면 안 된다. 함부로 조이면 한계가계는 붕괴하고, 넘치게 풀면 빚의 수렁에 더 깊이 빠진다.
새 정부도 18조 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마련해 저소득 다중채무자의 재기를 돕기로 했다. 하지만 빚에 짓눌린 처지에 싼 금리가 있다면 ‘우선 쓰고 보자’고 나올 공산이 크다. 행복기금 얘기가 나오자 벌써 연체가 급격히 늘고 있다. 서민금융 정책도 진화(進化)가 필요하다.
서민금융 정책, 進化가 필요해
이와 관련해 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금까지는 공급을 통한 자활 위주였다. 신용회복 없이 자금만 대주는 건 부채 연장에 불과하다. 신용회복을 병행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문제는 정책수단이다. 외국에는 장차 봉급이 오르면 인상분은 몽땅 저축하도록 하는 금융상품이 있다. 원금만 보장한 상태에서 이자는 추첨을 통해 왕창 몰아주는 ‘이자복권’도 팔린다. 서민은 원금이 적고 이자도 적다보니 저축 인센티브가 낮아 이를 끌어올리기 위한 아이디어들이다. 18년 만의 재형저축의 부활은 참 잘한 일이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저금리 상황에서 저축인센티브가 너무 약하다. 혁명적 발상, 파격적 조치가 필요하다.
‘러시 앤 캐시(달려오면 돈 준다)’식의 삶에는 미래가 없다. 서민 손에 통장을 쥐여 줘야 할까, 빚을 주고 신용카드를 줘야 할까. 통장이라면 어떤 통장이라야 할까. 새 정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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