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반쯤 가린’ 듯 뿌연 이 세상. 세상이 부조리해서인가, 아니면 내 눈이 어두워서인가?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하고 바른 길인지, 제대로 알고 싶어 화자는 열심히 신문과 잡지를 읽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뉴스를 두루 살피고, 자기처럼 사는 친구들 생각에도 귀 기울인다. 그리고 어디 납득할 만한 삶의 현장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서 보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답답하다. 이렇게 반쯤 눈을 가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제 화자는 터덜터덜 골목쟁이의 자기 집에 돌아와 ‘기다리고/기다리고/또 기다린’단다. 뭘 기다린다는 걸까?
막연한 걸 기다리지 마세요. 기다리는 건 사실 습관일 뿐입니다. 그게 편한 것이지요. 보세요. 당신은 ‘누가 반쯤 가렸다’고 하네요. ‘누가 어디론가 보내버렸다’고 하네요. 당신이 지금 요러고 사는 게 다 남의 탓이네요. 당신 의지는 어디 있나요? 세상의, 삶의 진면모를 알고 싶다면서 기껏 신문 잡지를 읽고 라디오와 텔레비전 뉴스를 듣네요. 당신을 통째로 내맡기고 있는 그 미디어 매체들이 이미 세상의 반을 가리고 있는 것을요. 그렇지 않다 해도 그렇게 눈이랑 귀만 갖고 살아서야 어찌 세상을 알 수 있을까요. 바짓단 숭숭 걷고 맨 종아리로 어디 논에라도 들어가 봅시다. 몸에 땀도 묻히고 거머리도 묻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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