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대북정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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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1일 03시 00분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취임 후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힘든 시험을 치르고 있다. 안으로는 정부조직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줄다리기가 있었다. 새 정부의 정책의지를 담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어렵사리 초빙했던 김종훈 씨는 사퇴했다. 정부조직법은 ‘식물정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등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밖으로는 북한의 도발이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시작해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를 우롱한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노골적인 군사적 협박을 하고 있다. 핵 선제 타격의 권리, 정전협정 및 남북불가침 합의의 백지화를 선언하고 서울과 워싱턴의 불바다, 제2의 조선전쟁을 협박했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판문점 직통 전화를 단절하고, 해안포문을 열고, 대규모 군사적 동원과 훈련을 하고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적 행동을 취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기반 구축’을 국정기조의 하나로 내세운 박 대통령이 어떻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해 위기국면을 화해와 협력의 국면으로 전환할 것인지도 매우 어려운 시험이 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일부 언론에서는 남북 대치와 위기 끝에 관계개선이 있었던 과거의 선례를 들며 남북화해를 성급히 점치기도 했다. 또 같은 맥락에서 대북지원의 재개를 암시하는 발언도 없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그 같은 역사적 패턴만을 근거로 관계개선을 기대하고 그를 위해 지원을 암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무엇 때문에 그런 패턴이 있었는지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전략적인 행보를 하지 못하면 자칫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적으로 위기 끝에 화해가 왔던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62년 쿠바미사일사태다. 핵무기 개발과 실전배치에서 미국에 뒤져 주요 냉전현안에서 끌려다녔던 소련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의 발사를 그 흐름을 반전시킬 계기로 삼았다. 베를린 등 도처에서 위기를 조장하고 각종 현안에서 미국을 몰아붙이다가 미국의 코앞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이미 소련이 실전배치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사정권에 있었기 때문에 쿠바의 미사일이 치명적인 군사적 위협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용인하면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미국은 핵전쟁을 각오한 대결을 벌였다. 결국 핵전쟁의 일보 직전에 멈춰 섰고 이후 데탕트가 시작됐다. 그 데탕트의 배경에는 ‘차마 생각하기도 싫었던’ 핵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가 1994년의 북핵 위기였다. 그해 6월 15일 정부는 실전대비용 민방위훈련을 실시했다. 방독면 구입을 권유했고 사람들은 비상식량과 연료를 구입했다. 당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유치한 수준이었지만 북한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을 불사한다는 각오를 과시했다. 그것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제네바 합의로 연결됐다.

이후 2002년 북핵 프로그램이 재가동되고 몇 차례의 위기가 초래됐지만 어느 정부도 그걸 막기 위해 전쟁을 감수한다는 배짱을 보이지 못했다. 그 결과 북한은 2006, 2009년 그리고 올해 2월 등 세 차례의 핵실험을 하고 그 핵무기로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기에 이른 것이다.

모든 국제위기는 차를 몰고 마주 달리는 치킨게임, 곧 배짱 싸움이다. 김정은 정권의 도발이 내부용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이는 동시에 새로 취임한 박 대통령의 배짱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섣부른 화해 제스처는 박 대통령의 배짱에 대한 북측의 오판을 불러올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과 과정을 관리하여 상대에게 정확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외교적 실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한미연합전력과 물샐틈없는 정책 공조를 과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입장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알리는 외교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정치적, 심리적 담력이다. 긴장 완화와 화해를 촉구하는 정치적 압력과 위험이 주는 심리적 압박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의 단결과 각오다. 내부의 혼란은 북한의 오판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가동에 참을성을 보여야 한다. 안으로는 국민이 단호하고 단결된 모습을 보이고 밖으로는 한미동맹의 공고함과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입장이 분명해질 때 북한은 진정으로 협력할 자세가 될 것이다. 그때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을 놓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할 때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박근혜#북한#장거리 로켓 발사#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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