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홍규]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한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이홍규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이홍규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은 가볍지 않다. 북한의 핵 위협, 1000조 원의 가계부채, 위기국면의 세계경제, 그리고 이념, 지역, 빈부로 나누어진 갈등구조가 그렇고, 물신주의와 약삭빠름에 자리를 내준 공동체적 가치와 질서가 그렇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보다 ‘원칙의 이미지’다. 그라면 무너져 내린 가치관과 도덕심을 재무장시켜 사회의 기본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칙의 단호함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의 한국을 살릴 덕목이다. 그러나 세상일에는 언제나 원칙과 유연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원칙만 주장하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어렵고, 유연성이 너무 크면 방향을 잃고 중구난방이 되기 쉽다. 원칙과 유연성을 조화시키는 지혜야말로 어느 지도자에게나 요구되는 덕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원칙 있는 유연성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과연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필자는 그 점에서 3가지 성찰의 노력을 들고 싶다. 첫째, 과거의 성공방정식을 잊어야 한다. 성공한 지도자에게는 나름대로의 방정식이 있다. 그러나 성공 이후에도 그에 집착하면 ‘성공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특히 과거에 보지 못 하였던 방대한 정보와 관료들의 깔끔한 보고서를 접하게 될 대통령은 그 성공의 방정식을 강화시키기 쉽다.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더 옳은 결정을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과거 역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참모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세상은 생각보다 더 다원적이고, 숨겨진 정보는 더 많기 마련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조건은 다르기 마련이다. 위축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친 자신감도 실패를 초래하는 법이다.

둘째, 소통에 대한 남다른 노력이다. 원칙은 고집으로 비치기 쉽고, 고집스러운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입을 닫아 버린다. 특히 대통령에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다. 소통의 1차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소통을 하지 못하면 결국 대통령 자신이 손해다.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참모들의 의견 개진을 막게 될까 봐 회의 중 밖으로 나와 전화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참모를 설득했다고도 한다. 소통은 참모와 국민의 지혜를 빌리는 비결이고, 자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길이고, 그들의 마음을 훔치는 수단이다. 정치인이었을 때는 정적만 이기면 되었지만, 대통령이 되면 정적은 없고 국민만 남게 된다. 국민과 싸워 이길 대통령은 없다.

셋째, 소의(小義)보다 대의(大義)를 보는 노력이다. ‘약속 대통령’이 공약을 저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을 더 위할 정책 대안이 있다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소의이고,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대의이다. 다만 그에게는 그것이 왜 대의인지를 국민에게 납득시킬 의무가 있다.

대통령의 성공은 국민의 성공이고 국가의 성공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에 온 국민이 진정 그 성공을 기원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실패만을 보아온 불행한 국민이기에 더욱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에는 박정희와 육영수의 얼굴이 읽혀진다. 그에는 단아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육영수 여사의 얼굴과 단호함과 결기가 넘쳐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이 모두 있다. 이 두 가지를 한 사람이 모두 갖는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세상일에는 이런 야누스적 속성이 필요하다. 일이 클수록, 문제가 복잡할수록 그렇다. 원칙을 저버려도 안 되지만, 원칙만 갖고 세상을 다스릴 수도 없다. 모든 일엔 때와 상황에 맞는 시중(時中)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지혜가 보태져야 원칙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홍규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원칙#유연성#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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