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차관들, 대통령비서실장과 권력기관장들을 대부분 관료 출신들로 임명했다. 행정고시, 사법시험 출신들을 기둥으로 삼고 육사와 정부출연연구소 출신들까지 넣어 공공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인재들을 주로 발탁했다.
고시 출신 중심의 한국의 관료사회는 이 나라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세력으로서 전문성, 효율성, 사명감 같은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정치권력에 약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도 갖고 있다.
그래서 정치민주화 시대로 접어들어서는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이나 진보적 학자들, 언론계 인사나 기업인 출신들도 각료로 발탁하는 인재등용의 다양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재미교포 기업가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영입하고 중소기업청장에 벤처기업가를 지명한 것은 매우 좋은 착상이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한국경제는 선진국을 따라가는 모방경제에서 선진국을 앞서가는 창조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다. 지시사항만을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는 재래식 관료주의보다는 산업사회나 시민사회와 소통하면서 융합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특히 작년 대선에서 국민들이 보여준 경제민주화와 복지증대 욕구는 정부의 역할이 강자보다는 약자를 더 보살피고, 효율성보다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시대적 변화를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가 지향하는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는 이번 정부 구성의 주축을 이루는 관료 출신들이 전문성과 사명감 같은 장점은 최대한 살리면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수동적 관료주의를 탈피해야 가능하다.
첫째, 모든 각료들은 책임 장관에 걸맞은 자율적 인사권을 확보하고 인사의 공정성을 확립해야 한다. 전통적 직업관료 출신들은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 실세들에게 순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내부 인사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기관장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공직인사권은 국민이 맡겨준 것이기 때문에 사사롭게 학연, 지연이나 친분관계에 좌우되면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또한 공직인사권을 장관이 독점하지 말고 하부에 위임하면 할수록 그 조직은 건강해진다. 국장, 과장이나 본부장, 팀장들이 자기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추천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능동적인 팀워크가 가능해진다.
둘째, 각 부처 장관이나 기관장들은 나를 따르라는 식의 지시형 리더십이 아니라 자유분방하게 토론해서 결정을 도출해 내는 융합형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관료 출신은 장관까지 올라온 자신의 과거 경험을 최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뀐 환경과 국민의 욕구를 잘 파악해 국정철학에 맞는 정책비전은 분명히 제시하되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는 직원들 스스로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관청 안에서 서로 아이디어를 내서 토론하는 분위기가 없는데 어떻게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건강한 복지사회와 선진국을 앞서가는 창조경제를 만들 수 있겠는가.
셋째, 정치적 포퓰리즘이나 이익집단의 압력에 맞서는 용기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임명직 공직자들은 일반적으로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맞서기 싫어한다. 선출직들이 자기 임기만을 염두에 두는 걸 나무랄 수는 없지만 국가가 법으로 정년을 보장해주는 공직자들은 장기적 국가이익을 생각할 의무가 있다. 각 부처는 자신들이 관장하는 분야의 사업자들을 대변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공급자인 사업자의 얘기만 듣지 말고 수요자인 일반시민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교육을 개혁하려면 대학교수의 입장보다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넷째, 이제는 행정의 효율성보다 공정성을 중시해야 한다. 국민들은 행정관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치적으로 왜곡되거나, 권력이나 금전적 유혹이 개입되어 불공정하게 처리되는 것을 제일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행정의 공정성은 윗사람이 정치권력이나 금권에 휘둘리지 않아야 가능하고 그래야 아랫사람이 뒤따른다. 이것이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직기강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이 있어야 정책추진의 에너지가 생긴다. 최근처럼 다양한 신문 방송 매체들이 발달된 시대에 고위 공직자들이 신문이나 TV 토론에 나오지 않는 것은 비전문가들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하는 무책임한 일이다.
끝으로, 각부 장관들은 그 부처의 수장이기 전에 국가행정의 총체적 결과를 책임지는 국무위원이다. 전통적 관료 출신들은 자기 부처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을 기관장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박 대통령이 부처이기주의 타파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재정건전성을 지키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길이고, 산업과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기술(ICT), 문화를 융합시켜 창조경제를 만드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관료주의는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으면서도 정치변혁기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한국의 관료주의는 정치민주화시대에도 이 나라를 행복하고 건강한 나라로 발전시켜가는 주역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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