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연수]키프로스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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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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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키프로스가 여러 번 등장한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대지의 신 가이아와 낳은 괴물 형제들을 지하 세계에 가둔다. 복수심에 불탄 가이아는 아들 크로노스를 시켜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바다에 던져 버린다. 그 자리에 하얀 거품이 모이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탄생했으니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다. 바로 키프로스 섬 앞바다였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 이야기도 키프로스가 배경이다. 독특한 미술과 건축 양식이 발달한 키프로스는 서양 문화사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키프로스의 영어 발음은 사이프러스다. 이 섬에 많이 자라는 측백나무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스 동남쪽, 터키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이 남한의 10분의 1이다. 한국처럼 남북으로 나뉘었지만 현재 남쪽의 키프로스공화국만 국제사회에서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인구 113만 명에 국내총생산(GDP) 179억 유로(약 25조 원)로 우리나라 경제 규모의 5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 나라가 요즘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채권단이 구제금융 지원 방안에 합의한 뒤부터다.

▷그리스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이 나라는 그리스 경제가 흔들리면서 덩달아 부도 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구제금융을 신청했는데 지난 주말 채권단이 내놓은 조건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구제금융을 주는 대신 10만 유로(약 1억4400만 원) 미만의 예금에는 6.75%, 10만 유로 이상에는 9.9%의 세금을 떼어 분담금을 마련하라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예금주들은 바로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을 찾겠다고 아우성을 쳤고, 정부는 은행들을 폐쇄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른 경제 위기 국가들에서도 은행 예금을 떼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번지면서 유럽 전역에 뱅크런(bank run·예금 대량 인출) 조짐이 나타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키프로스 의회가 이 조건을 거부하면서 키프로스 사태는 제2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키프로스 정부는 10만 유로 이상의 예금에만 세금을 매기는 등 새로운 안을 만들어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지만 통과 여부는 알 수 없다. 이번 사태에는 유로존의 강호 독일과 러시아의 감정싸움까지 곁들어 있다. 키프로스의 예금 700억 유로 가운데 상당액이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피하기 위해 흘러들어간 러시아 돈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러시아인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세금을 부어야 하느냐”고 불만이고, 러시아는 “(구제금융안이) 불공정하고 위험한 아마추어 해법”이라고 비난한다. 아주 먼 작은 섬나라 때문에 한국까지 주가가 급락하는 등 일주일째 금융시장이 출렁였다. 세계화 시대를 실감하게 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청와대#부실 검증#김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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