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우리 정부는 화들짝 놀랐다. 로켓 추진체를 해체하는 것처럼 위장한 북한의 기만전술에 속아 발사가 임박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김정일 사망 이틀 뒤인 2011년 12월 19일 북한이 ‘특별방송’을 예고했지만 발표 직전까지 그의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하고 허둥댔다. 북한 정보 수집을 주 임무로 하는 국가정보원의 무능을 드러낸 사례들이다. 미국 농구스타 출신 데니스 로드먼의 발언을 통해 비로소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국정원의 정보수집 능력을 의심케 한다.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는 예비역 장성 모임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국정원은 죽었다”고 개탄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북한의 행동을 예견해 대응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은 최고 권력자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 것이다.
남 후보자의 국회 인사 청문보고서가 그제 채택됐다. 그는 청문회에서 “휴민트와 관련된 정예요원 육성을 위한 교육체계와 예산 규모 등을 면밀히 검토해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며 “북한 핵심부에 접근할 수 있는 공작망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폐쇄 국가인 북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선 인간 정보(휴민트·Human Intelligence), 영상정보(이민트·Image Intelligence), 신호정보(시진트·Signal Intelligence)를 총동원해야 한다.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휴민트는 위성 정찰과 통신 감청으로 이뤄지는 이민트와 시진트보다 훨씬 더 내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이민트와 시진트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휴민트는 우리 힘으로도 얼마든지 강화할 수 있다. 2만4000명이 넘는 국내 입국 탈북자들이 북한 각계각층과 맺고 있는 인연만 해도 엄청난 정보자산이다. 국정원이 확실한 의지를 갖고 휴민트를 구축하려 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연루돼 신뢰를 잃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국정원은 원세훈 원장의 지시사항이 민주통합당으로 유출되면서 내부 보안단속도 제대로 못하고 정치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으로 국민의 불신도 증폭됐다. 남 후보자는 국정원이 국내 정치와는 선을 긋고 본연의 임무인 국가안보에 충실하도록 이끌 책임도 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와 남 국정원장 후보자의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인식도 하루빨리 조율해야 한다. 남 후보자는 “한반도에 평화적 환경이 정착될 때까지 한미연합사가 존속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김 내정자는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에 관한 한 국가안보실장과 국정원장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