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불량식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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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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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학교 앞 문방구는 항상 아이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코 묻은’ 돈으로 호떡이나 어묵, 떡볶이를 군것질했다. 선생님은 불량식품을 사 먹지 말라고 했지만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사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이들은 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밀가루반죽으로 풀빵을 굽는 문방구 아주머니 앞에서 침을 꼴깍 삼키곤 했다. 제조처 불명의 ‘아이스케키’나 ‘하드’ 같은 아이스크림도 아이들 입을 즐겁게 만들었다. 오리온이나 롯데 해태 크라운 같은 대기업 과자를 쳐다볼 여유가 없던 아이들에겐 불량식품이 아니라 ‘서민식품’이었다.

▷문방구의 군것질거리도 유행을 탔다. ‘핫도그’는 뒤늦게 등장했지만 이름부터 신기해서 곧바로 군것질의 왕이 됐다. 아이들은 호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지금이야 생일 턱을 패스트푸드점에서 내지만 그때는 핫도그 하나만 얻어먹어도 큰 호사였다. 물론 위생상태도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배탈이 나서 고생했던 기억도 별로 없다. 영세한 구멍가게였지만 문방구 주인과 학생 간에는 적어도 먹을 것 갖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었던 것 같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그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학교 주변 문구점에선 식품을 팔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앞으로 불량식품을 만들거나 팔다가 걸리면 매출액의 10배를 과징금으로 내야한다. 또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던 규정을 ‘○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바꿔 처벌을 강화했다. 식약청의 보고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불량식품을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과 함께 4대 악으로 규정하고 척결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3대 폭력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근절하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불량식품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학교 앞 문방구는 영세상인들이 운영하는 대표적인 골목상권이다. 서민식품을 생산하는 사람도 가내수공업자이고, 유통업자도 자영업자요, 소상공인이다. 비록 작지만 ‘문방구 상권’에서 억척스럽게 일을 해 먹고살고 아이들 대학까지 보낸 사람들이 바로 우리네 부모들이었다. 마약과 담배, 술이 판치는 세상에 학교 앞 문방구부터 먼저 옥죄는 것이 아쉬운 이유다. ‘불량식품’ 단속을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문방구 영업 자체에 주름살이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아니면 문방구 식품도 위생점검을 철저히 해 그대로 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불량식품#군것질#품의약품안전청#문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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