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나 하나 꽃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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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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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꽃 피어’
조동화(1948∼)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어몽룡의 매화도.
어몽룡의 매화도.
5만 원권 지폐에 등장하는 ‘월매도’를 그린 조선 중기의 화가 어몽룡(1566∼?)은 벼슬길보다 매화그림에 더 열정을 쏟았다. 하늘 향해 곧게 뻗은 줄기에 꽃봉오리가 어우러진 그의 묵매도는 당대에 명성이 자자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은 오랜 세월 매화를 사랑한 매화문화권으로 통한다. 매화는 가혹한 추위를 이기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야무진 꽃나무다. 동양의 선비들은 집단에 함몰되지 않고 고결하고 주체적 삶을 살고픈 의지를 꽃에서 배우고 싶었던 것일까. 매화를 주제로 서울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얼마나 많은 선인이 글과 그림으로 이 꽃을 예찬했는지를 확인해준다.

매화뿐일까. 세상의 모든 꽃은 다들 눈치 보지 않고 제 시계에 맞춰 꽃을 피운다. 조동화 시인의 짤막한 작품은 나부터 꽃망울을 터뜨려야 세상이 꽃밭이 될 수 있다고 들려준다. 지난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인용해 화제에 올랐던 시는 ‘하나라는 최소단위’가 미약해 보일지라도 결국 거대한 변화의 시작은 나로부터임을 느끼게 한다.

최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수상자로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 씨(72)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 시가 생각났다. 그의 장기는 혁신과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디자인, 대지진도 끄덕 없이 버텨낸 견고함이다. 건축의 미학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던 그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낸다.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뜻에 맞춰 건축을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는 나 자신 또한 떳떳치 못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돈과 얽혀 있는 지금의 사회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초월적인 건축이었다.”

그는 젊은 건축가들을 설득해 피해 지역의 마을을 재건하기 위한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밥 먹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위한 쉼터를 설계했다. 재해현장에 남은 나무와 돌 등을 재료로 삼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작은 치유의 공간을 지었다. 지진 이후 획일적인 가설주택만 대량으로 들어선 땅에 1000년 후에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은 건축가의 꿈이 접목된 것이다. 삭막했던 마을에 인간적인 건축의 숨결이 깃들었다. 재해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생의 의욕마저 놓아버렸던 주민들이 그의 손을 꼭 쥐고 “밝고 따뜻해서 참 좋다”며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사를 건넸다. ‘개인을 넘어선 개인’의 가치를 입증한 순간이었다.

훗날 그는 건축을 시작한 이래 집을 만드는 사람과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이 이만큼 하나가 되는 일을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세상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당신 스스로 이 세상에서 보고자 하는 바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간디의 말, 그는 행동으로 옮겼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나 하나 꽃 피어#매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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