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현정택]‘미국무역대표부’를 닮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5일 03시 00분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우여곡절 끝에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었다. 핵심적인 내용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이지만 통상조직을 개편한 것도 매우 중요한 변화다. 법안의 심의 과정에서 통상 기능의 개편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은 법령의 정비보다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새로운 통상교섭 체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은 어떤 것일까.

우선 산업통상자원부와 정부 관계 부처 간에 유기적인 통상교섭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교섭의 책임을 맡되 가능하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같은 종합 협상의 수석대표 역할에 중점을 두고, 협상의 세부 내용은 담당 부처에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협상 책임

세계 각국과 수많은 협상을 전개하고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의외로 매우 단출한데, 이는 관계 부처의 전문성과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이다. 농산물 협상은 농업 전문가가, 특허에 관한 지식재산권 협상은 특허청 담당관이, 동식물 검역은 검역소 기술자가 협상의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게 하는 식이다.

또 통상정책에 대한 부처 간의 이견을 효과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이는 사실 통상과 관련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FTA를 시작하여 싱가포르와 협정을 맺었던 일본은 유럽연합(EU) 미국 등 큰 시장과의 협상에서 지지부진해 시장 확보에 뒤처졌는데 근본 원인은 부처 간에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협상에 필요한 카드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번에 조정 기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섭과 총괄조정 기능을 일원화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맡기로 했으나 민감한 농산물 문제 등 타 부처 소관 사항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 통상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국내 정책과 바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신설되는 경제부총리가 의장을 맡게 될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적극 활용하여 효과적인 정책 조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상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제통상 협상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더 긴요한 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통상의 범주에는 공산품 농산품 등 상품 무역, 금융 통신 운수 의료 등 서비스 무역, 지식재산권이 포함되며 협상의 내용은 보조금 조세 인허가 같은 제도 및 정책 사항을 망라하고 있다. 따라서 통상만을 다루는 특별한 사람에게 의존하기보다는 각 분야의 정책 담당자들이 대외경제와 국제통상에 관한 식견을 넓혀 나가도록 해야 한다. 최근 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야별 회의 의장을 한국 사람이 맡는 등 전문가가 배출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국제 전문가가 나와야 한다.

이와 함께 재외 공관의 통상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통상 기능의 이관에 가장 우려를 많이 제기한 곳이 대사관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공관에 대한 지휘 감독 및 예산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외교부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정책 수립 과정에서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세부내용은 부처 전문가 활용을

대사관도 외교부 업무뿐 아니라 정부 전체를 현지에서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일해야 하며 공관에 나와 있는 직업외교관과 각 부처 주재관의 구분 없이 능력과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두루 일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업외교관 외에 경제 전문가들에게 공관장이 되는 기회를 늘려 줄 필요도 있으며, 마찬가지로 외교부 직원들에게도 경제 부처에 근무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끝으로 통상정책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함은 굳이 광우병 파동을 떠올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국회와 이해단체에 준비 단계에서부터 이해와 협조를 구하면서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장 개방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사실이므로 국제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노력을 병행해 나가 세계 무역 8대 강국으로서의 통상교섭 체제를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정부조직법 개정#통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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