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군인의 아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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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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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손자병법의 달인’도 자기 전쟁에서는 무참하게 패퇴했다. ‘별 넷’을 달기까지의 40년은 화려했으되 그 8분의 1인 전역 후 5년의 흠결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군인은 군복을 벗은 후에도 혁대를 너무 풀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상처투성이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본인은 그렇다 치고 문득 김 후보자의 두 아들이 떠오른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아내와 딸이 울고 있다”며 물러났는데 명예를 먹고 산다는 군인의 아들, 그것도 4성 장군의 아들은 더 괴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근거는 없다.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고등학생 시절인 1970년대에 아버지가 장군이었던 몇 명에게 물어봤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너무 엄격해서 반발도 많이 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보니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 아버지는 그걸 몸으로 증명하신 분이다.”

“아버지 모습을 봐 와서 그런지 제복 입은 남자가 좋았다. 마침 대학 4학년 때 경찰관을 만나게 됐고, 졸업 후 곧바로 결혼했다. 옳은 선택이었다.”

“장군이라고 하면 남들은 굉장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집은 부족한 게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조차 감사한다. 장군의 딸이 어디냐. 그거 아무나 못 듣는 말 아니냐.”

“부모님이 말다툼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어머니가 ‘당신은 말만 장군이지, 현역 시절 해 놓은 게 뭐가 있느냐. 남들은 다 챙겨 놨다는데 당신만 깨끗하면 다냐’고 면박을 줬다. 아버지는 ‘나도 욕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식들한테 손가락질 당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벌컥 화를 내고 방을 나가셨다.”

당시에 그들의 아버지처럼 올곧은 군인만 있었던 것도 절대 아니고 일반화하기에는 사례도 적지만 군인의 자식은 아버지로부터 크든 작든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김 후보자의 아들도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리다.

자식에게 영향을 주는 직업이 꼭 군인뿐이냐고 물어도 대답이 궁하다. 내년 3월 경기 파주에서 개교하는 군인 자녀를 위한 한민고교(이사장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가 답이 될지 모르겠다. 한 학년이 400명(경기도 주민 자녀 등 120명 포함)인데 전원이 사관생도처럼 기숙사생활을 한다. 규율도 일반 고교보다는 엄할 것이다. 다른 직업의 자녀만을 위한 학교를 만든다면 조롱받을 이 시대에, 왜 유독 군인 자녀만을 위한 학교가 필요하며 어째서 가능한가. 군인은 일반인과는 다른 가치관과 교육관을 갖고 있으며, 그런 부모를 존중하는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널리 알려진 군대 조크의 함의는 무엇인가. ‘여자가 선호하는 남편감 2위가 군인이다. 그럼 1위는?’ 답은 ‘민간인’이다. 군인을 비하하는 뜻도 들어 있다지만 군인은 그만큼 특별한 직업이고, 그래서 자식들도 남다른 영향을 받는다고 하면 오버일까.

김 후보자의 비극은 특별했던 군인이 변한 데서 잉태됐다. 대령 아버지를 뒀던 이는 말한다. “예전의 군인은 민간인보다 훨씬 적은 봉급을 받아도 당당했다.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러 직업 중 하나로 떨어진 것 같다. 군이 세속화했다고나 할까.”

동의한다. 군도 민주화하면서 투명해진 것까지는 좋은데 군인까지 투명인간처럼 가벼워졌다. 위병소 출입 절차만 간소화하면 될 걸, 군 스스로가 담을 너무 낮춰 버린 탓이다. 몸은 영내에 있는지 몰라도 군인정신은 슬그머니 ‘탈영’한 지 오래다.

예전 군 비리는 부대 운영비나 물건을 빼 먹는 군수(軍需)나 공사(工事) 비리, 진급이나 전보와 관련된 인사 비리, 즉 영내 비리가 주류였다. 영내 비리도 물론 나쁘지만 김 후보자를 불명예 퇴진시킨 땅과 아파트 투기,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주식 보유 같은 의혹은 민간인의 그것과 너무 닮아 민망하다. 마지막은 군인에게는 더 굴욕인 ‘거짓말’이었다. 이게 우연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늙은 군인의 노래’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 청춘.’

노래는 1979년 발표되자마자 금지곡(1987년 해제)이 됐다. 평생을 군에 바쳤던 노병이 자신의 군 생활을 허망하게 회고하는 듯한 대목을 트집 잡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계급과 상관없이 군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존경하는 자식이 있다면, 이 노래는 지금도 명곡이다. 군인만 궁핍하게 살라는 게 아니다. 군인만큼은 이 시대에도 명예에 살고 죽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김 후보자는 군인은 변했는지 모르지만 군에 대한 민간의 기대는 변하지 않았다는 걸 읽는 데 실패했다.

김 후보자가 만약 장관이 됐다면 아들이 46만 명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청춘의 안온함을 버리고 조국의 부름에 응한 젊은이가 모두 국방장관의 아들이다. 아들은 소원한다. 명예를 중히 여기는 참군인 밑에서 조국의 아들로 거듭나길…. 김 후보자는 그 소원을 들어줄 체통을 잃었다. 군인의 아들도 명예로 산다. 내일은 목숨으로 그걸 증명한 천안함 46용사를 가슴에 묻은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군인#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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