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링컨’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메리 토드 여사는 어려서 죽은 셋째 아들에게 집착하며 남편을 괴롭히는 인물로 묘사된다. 낭비벽이 있어 남북전쟁 중에도 백악관 실내 장식과 집기 교체에 많은 돈을 써 의회와 갈등을 빚는다. 성질이 포악해 가난한 변호사이던 링컨을 자주 폭행했다고 전해진다. 링컨은 가정에서 안식을 찾을 수 없었기에 수정헌법에 더 매달렸는지 모를 일이다. 언론이 토드 여사를 공격하기에 바빠 링컨 대통령의 잘못에 상대적으로 관대했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토드 여사는 링컨을 위인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소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고 권력자의 부인은 단순한 내조자가 아니라 남편의 생각과 판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 부인 중에는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처럼 남편보다 더 큰 인기를 모은 사람도 있다. 미디어 정치 시대에 대통령 부인은 국가 이미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팔목 장갑과 대담한 선글라스의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젊고 세련된 미국’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재임 중 결혼한 카를라 브루니 여사는 ‘화려하고 자유로운 프랑스’라는 이미지를 보여줬다. 퍼스트레이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김정은 부인 이설주가 등장했을 때도 세계가 북한의 변화 조짐을 기대했을 정도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해외 방문에 동행한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세련된 매너와 패션 감각으로 남편보다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국민 가수인 펑 여사는 중국에서는 시 주석보다 더 유명했다. 18세 때 인민해방군 문예병으로 입대한 그는 30년 넘게 군대 가수로 활동하며 소장(우리의 준장)까지 진급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중국 여배우 탕웨이를 빼닮은 듯한 미모를 뽐냈다. 군 생활에서 단련 받은 책임감과 온화한 성품은 그의 자산이다. 펑 여사의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그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남편이 출세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중국에서 그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이 없었던 것은 정국에 피바람을 몰고 온 마오쩌둥(毛澤東) 부인 장칭(江靑)에 대한 트라우마가 워낙 깊었기 때문이다. 펑 여사의 등장은 그런 금기를 깼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 해도 전임 장쩌민(江澤民) 주석이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펑처럼 세련된 아내가 있었다면 금기를 깨는 시점이 빨라졌을 수 있다. 엄청나게 커진 경제력과 높아진 국가 위상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볼품이 없고 시대적 흐름에 뒤처져 있다는 인상을 줘왔던 게 사실이다. 펑 여사의 인기는 중국의 패션과 예술 등 소프트파워를 보여주면서 중국도 세계의 중심으로 성큼 들어섰음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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