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직자의 학위 욕심, 대학의 학위장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8일 03시 00분


고위공직자 검증 과정에서 논문 표절 의혹이 줄줄이 불거지고 있다.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성한 경찰청장 후보자는 박사학위 논문의 표절 의혹과 관련해 “일부 인용 표기가 빠진 데 대해 사려 깊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표절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박사학위 논문도 표절 의혹이 제기돼 한양대가 예비조사 없이 곧바로 본조사에 나섰다.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의 박사학위 논문은 모 교수의 논문을 복사 수준으로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 본인이 사과했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공직후보자의 논문 표절 시비가 논란이 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과 중복게재 의혹으로 13일 만에 사퇴한 이래 논문 표절은 공직자 검증의 필수 항목이 됐다. 그런데도 각기 지난해와 올해 학위를 받은 이성한 후보자와 윤성규 장관은 엄격해진 잣대를 지키지 않았다.

표절은 타인의 지적 성과물을 훔치는 학문적 절도 행위다. 연구 윤리의 기본도 못 지키는 사람이 어떻게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고위공직자가 될 수 있겠는가. 명백한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릇된 인식, 표절이 드러나도 눈감아주는 잘못된 관행, 능력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풍토가 표절 시비의 원인이다. 논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지도층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학자 출신도 아니면서 박사학위를 가진 공무원이 꽤 많다. 더러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도 있겠으나 학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좋게 봐주기 힘들다. 바쁜 공직생활을 하면서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고 언제 수업 듣고 논문 쓸 시간을 냈는지 궁금하다. 퇴직 이후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는 욕심으로 공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득을 꾀했다면 문제다.

공직자의 논문 표절은 대학 책임도 크다. 대학이 정관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방패막이로 활용하기 위해 학위를 남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저기 난립한 특수대학원들은 학벌 세탁과 장식용 학위 제공 기관으로 변질돼 가고 있다. 대학의 학위장사를 막으려면 표절 논문의 지도교수와 학교에도 연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교수 채용 시 무조건 박사학위를 요구하는 풍토도 없애야 한다. 일본에선 풍부한 현장 경험과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교수가 될 수 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학위를 따려는 욕심도, 수준 미달의 학위를 주는 대학도, 불필요하게 학위를 요구하는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고위공직자#논문 표절#국회 인사청문회#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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