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준하 사인 규명해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8일 03시 00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장교이자 ‘사상계’를 창간한 정치인 장준하 씨(1918∼1975)가 둔기에 맞아 숨진 뒤 추락했다는 유골 감식 결과가 나왔다. 장 씨가 죽은 지 38년 만이다. 현재까지 검찰 기록에 장 씨는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 등산 도중 실족사한 것으로 돼 있다.

지난해 8월 고인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골이 사진으로 처음 공개됐을 때 머리뼈 함몰 부위가 일반인의 눈에도 확연했다. 국내 부검의(剖檢醫) 1세대에 속하는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유골 감식 결과 고인의 머리뼈 함몰은 외부 가격(加擊)에 의한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감식을 의뢰한 장준하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는 공적 기관이 아니지만 감식 결과는 신뢰성이 높아 보인다.

그의 죽음에는 애초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그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유신정권에 맞서 개헌서명 운동을 시작하기 3일 전에 사망했다. 본보는 당시 사회면 머리기사로 고인이 왜 70도 경사의 벼랑을 장비 없이 내려오려 했는지, 등산 코스를 따라가다가 왜 하필 절벽을 택해 혼자 내려오려 했는지 등의 다양한 의문을 제기했다. 본보의 자매회사인 동아방송도 진상규명을 위해 비밀 취재까지 시도했으나 1주일 만에 중앙정보부의 압력으로 취재가 중단됐고 이후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이 유골 감식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관련 증인 채택을 요구했을 때 본보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는 대선 2개월 전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제 대선도 끝나고 타살로 볼 만한 증거가 나온 만큼 정부 차원에서 재확인하고, 타살이라면 누가 장 씨를 죽였는지 규명해야 한다. 이 사건은 살인범이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고인은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국회는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제정 등 재조사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고인의 사망에는 당시 중앙정보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고인의 부인 김희숙 씨를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유신 통치 전반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은 사인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장준하#사상계#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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