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티(反) 안철수는 아니다. 그도 정치현장에서 경험을 축적하고 경륜을 쌓는다면 대통령 후보의 재목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국회에는 자연과학 전공자가 너무 적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래창조과학부에 열정을 쏟는 것도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은 물론이고 기후변화, 줄기세포, 원자력 같은 중요 정책을 논의함에서 국회에 자연과학 전공자가 다수 들어간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안철수가 가는 길에서 최대의 적은 자신이다. 젊은 세대는 안철수에게 환호하지만 나이든 세대는 그의 신비주의, 과대포장(과포), 소통장애에 거부감을 느낀다. 인구 비중이 해마다 높아지는 50대 이상 유권자를 끌어안지 못하면 그는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는 성공할지 몰라도 대선에서는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그는 2011년 관훈포럼에서 이명박 정부의 총리직 제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청와대에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전달받지 못했다. 누가 전달하기로 했는지 그 사람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국의 총리 자리 제의가 이렇게 허술하게 배달사고가 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MB 청와대에서 핵심 요직을 지낸 한 인사는 “총리 제의는 과포”라고 단언했다. 이 인사는 안철수에게 지식경제부 장관 제의를 했으나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같은 주식 백지신탁과 매각 문제에 걸려 스스로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장관 자리보다는 안랩의 경영권을 중시한 것이다.
안철수는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안 씨가 KAIST 교수로 재직할 당시 청와대 고위관료가 조교에게 메모를 남겨놓아도 며칠씩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불통(不通)이라는 말을 듣지만 안 후보 수준의 통신 먹통은 아니다. 대통령 후보설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뒤에는 기자들이 안철수의 집 앞에서 진을 쳤지만 한 줄 기삿거리를 얻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의 정치인들은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도 응접실로 나와서 정치부 기자들의 전화를 받았다. 기자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메신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를 띄운 것은 청춘콘서트와 TV 예능프로그램인 힐링캠프 그리고 교과서의 과포다. 입영날 아침 일화는 다시 꺼내지 않겠다. 안철수 관련 글은 초중고교 교과서 11종에 실렸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도 교과서에서 이런 대우를 못 받았다. 전경련은 2011년 “내년에 나올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 전태일 분신 사건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다루고 있지만 이병철 정주영 씨를 소개한 교과서는 단 한 권이고 그것도 간략한 사진 설명뿐”이라는 분석 자료를 낸 적이 있다. 교과서를 저술하고 편집하는 이들의 균형 감각이 모자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안철수가 좀더 도전적이고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길을 택하려면 부산 영도에 출마했어야 한다. 야권 후보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에서 무혈입성을 시도하는 것은 국회의원이 꿈인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통령을 넘보는 정치인이 할 일은 아니다. 안철수에겐 노무현 같은 도전정신이 없다는 이야기다.
노회찬 전 의원은 안기부 도청파일에 들어 있는 떡값 검사의 명단을 폭로했다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기업으로부터 떡값 받은 검사의 명단이 틀려서가 아니라 도청한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는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억울함’을 아내 김지선 씨가 풀겠다고 나섰다. 김 씨는 남편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단순한 세습 후보가 아니라 엄혹한 유신 시절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한 경력이 있다.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는 그가 동물원이라고 비난하던 재벌기업의 행태와 뭐가 다른가. 안철수가 다시 대통령 후보에 도전한다면 이번 골목상권 잠식이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안철수가 대선 캠프를 도왔던 자원봉사자 전원에게 자성과 사과를 담은 e메일을 보내면서 ‘친구 추천’을 부탁했다. 전국의 지지자들에게 노원병 지역구인 서울 상계동에 사는 지인을 소개해달라고 한 것이다. 청와대 주요 인사의 전화도 안 받는 사람이 다급했던 모양이다. 안철수가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소통과 정치의 땀 냄새를 배운다면 다행이다.
박 대통령을 보더라도 소통은 정치인의 소중한 덕목이다. 박 대통령의 한 달은 국민에게 실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더 지켜보겠다는 국민이 많긴 하지만 지금까지 장차관 인사를 보면 박 대통령은 심각한 소통장애에 걸려 있다. 어떤 이는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성접대 의혹으로 물러났다. 무기중개 업체에서 월급을 받던 사람이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돼 안보가 위중한 시기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해외 계좌를 보유하고 탈세 의혹이 있는 로펌 변호사 출신을 앉혔다가 낭패를 당했다. 민정수석비서관실의 검증 부실만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이너서클이나 수첩에만 의존하지 말고 의견을 널리 구했더라면 인사 실패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시대가 막을 내릴 무렵에는 국민이 가장 주목하는 정치인의 덕목이 바로 소통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대권을 꿈꾸는 안철수는 먹통과 과포의 벽을 허물어야 소통장애를 치유할 수 있다. 사람은 바뀌기도 하고 안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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