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이후 ‘관행’ 타파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4강에 특사를 파견하던 관행을 깨고 초청받은 국가에만 선별적으로 특사를 보냈다. 당선인이 요란하게 다니면 현직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며 기자회견과 지방 현장 방문도 자제했다.
그런 관행 타파의 행보는 인선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중소기업청 사상 처음으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청장을 발탁했다.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벤처사업가 출신의 외국 국적 교포를 영입했다.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국내 최고의 세법 전문가를 앉혔다.
그동안 내각의 수장은 관료, 정치인, 학자들로만 꾸렸던 관행을 깨고 기업인이나 전문 분야 법조인 등 현장에서 오래 뛴 전문가를 영입한 것이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틀에 박힌 공직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대통령의 승부수였다. 그러나 그렇게 영입한 외부 인사들은 모두 낙마해 인사 실패의 대표 사례가 되어버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전문성 있는 외부 인사를 쓰기가 이제 겁이 난다”고 말했다. 억울하다고도 했다. 초기에 대선 공신들을 무리하게 입각시키려다가 낙마한 이명박(MB) 정부 때와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변화를 꾀하려다 낙마한 이번 정부는 경우가 다르다는 거다. 관행을 깨보겠다는데 기존의 도덕적인 검증 잣대를 들이대는 게 지나치다는 생각도 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변명을 모두 인정한다 해도 청와대가 놓친 한 가지가 있다. 인사의 가장 기본인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거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적재적소의 전문성만으로도 인재를 발탁하는 충분한 사유가 됐다. 당시 국민들은 후보자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았다.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존안카드에 주요 인사들의 뒷조사 내용이 다 적혀 있었다. 그만큼 검증을 하는 데 어려움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수사권 없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조금이라도 무리하게 검증 작업을 벌이면 당장 ‘사찰’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장관의 덕목에는 전문성뿐 아니라 자리에 맞는 품격이라는 항목이 추가됐다. 그만큼 국민의 인권 의식과 도덕적 수준이 높아졌다.
대통령은 업무보고 때마다 각 부처에 “공무원의 시각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책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인사 난맥의 대목에서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봤으면 하는 대목이다.
국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을 위해 전문성 있는 인사를 임명했다”고 생각할 때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민이 바라는 인선’과 국민이 ‘진정’ 바라는 인선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 눈높이만 맞춘다면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대통령의 꿈도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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