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만식]‘손주 돌보미’ 지원정책 재고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이만식 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만식 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세간에 회자된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 아파트 이름을 영어나 프랑스어, 그것도 발음이 곤란하게 지어야 값이 비싸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며느리들의 생각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도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한글 이름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생겼다. 시어머니가 혼자 찾아올 수 없자 시누이와 함께 집을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요즘처럼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시대에는 (시)어머니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최근에는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해서 생긴 이야기가 대세다. ‘어떻게 하면 자식들이 손주들을 맡기지 않을까’에 대해 연구를 한 (시)어머니들이 묘안을 냈다. 손주 밥 먹일 때, 할머니가 음식을 당신 입속에 넣고 한참을 씹다가 손주 입에 ‘쏙∼’ 넣어주면 “비위생적”이라며 손주들을 다시는 안 맡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아이를 맡길 곳이 부족한 자녀들이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하니까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 영어 발음을 정통 한국식으로 바꾸어 손주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씁쓸하다.

최근에 여성가족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정책인 ‘손주 돌보미 사업’도 위의 이야기들과 무관하지 않다. 이 사업은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들에게 정부에서 한 달에 4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요즘 할머니들이 당신들의 삶에 충실하고 노후를 즐기는 데 거추장스러운(?) ‘손주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적어지니까, 할머니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책이 진정한 의미에서 친(親)복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돌보다가 사고라도 나면 누가 보상해야 할까. 고용주 격인 정부가 보상해야 하는 것일까. 손주들을 돌보다가 좀 쉬고 싶은데 자식들이 “돈도 받는데 좀더 잘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 또 이번 정책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는 있을까. 세원을 밝히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대상자가 적지 않기 때문에 많은 예산이 들 터인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된다. 또한 실제로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돌보고 있는지 점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들의 자격과 급여는 어떻게 책정하려고 하는지, 우려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가사도우미’라는 이름으로 노인이나 장애인 가정에서 봉사하게 하고 정부에서 일정액을 지급한 적이 있다. 좋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시작한 정책이었음에도 그 이후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서 복지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정책이 지향하는 방향도 중요하지만, 그 정책으로 인하여 파생될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좋아야 지속 가능하고 훌륭한 정책이 될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번 정책이 추구하는 방향이 옳다고 수용해도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여러 가지 영향력까지 생각했을 때 복잡한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아파트 이름으로 시어머니를 막으려다가 시누이를 불러온 것 같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진 않을지 진짜 걱정이다.

이만식 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손주 돌보미#지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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