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세 살 어린이가 목숨을 잃은 충북 청주 엘리트어린이집의 원장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교사와 운전사에게 수시로 안전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종합보험에도 가입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얼핏 다 해놓은 듯했다.
어린이 안전에 신경을 썼다지만 A 씨는 사고 버스를 통학차량으로 신고하지 않았다. 도로교통법상 신고하지 않고 운영해도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고하면 어린이가 안전하게 타고 내리도록 돕는 어린이용 발판, 운전자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광각 실외후사경(볼록거울)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의무 사항이 늘어나게 된다. 안전시설 설치에 드는 비용은 약 200만 원. 올해 사망사고를 낸 2대의 통학버스 모두 안전시설은 없었지만 보험에는 가입돼 있었다. 부모에게 억만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아이의 목숨을 놓고 어린이집과 학원은 200만 원을 아끼면서 사고에 대비하는 ‘얄팍한 계산’을 했던 셈이다.
취재하는 내내 분노와 자괴감이 떠나질 않았다. 기자가 운전사거나 학원장이라도 규정을 지킬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200만 원을 아끼다 단속에 걸리면 범칙금 7만 원을 내면 그만이다. 설사 아이가 죽어도 학원 운영에는 문제가 없다. 운전사와 버스는 또 구하거나 빌리면 된다. 사고 소식을 접한 이들은 “아이가 죽었는데 운전사는 불구속이고 어린이집 교사, 원장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신고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현행법 때문에 전국의 어린이 통학버스가 몇 대 운영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이 “13만6000여 대가 운행 중”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 수치도 통계청에 등록된 어린이집과 학원 수에 1.5를 곱하는 주먹구구식으로 나온 것이다.
어린이 통학버스가 안전하게 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단속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은 “몇 대가 운행되는지도 모르는데 수많은 어린이 통학버스를 일일이 쫓아다니며 단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놓았다. 어린이를 안전하게 보살펴야 할 통학버스가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변했는데도 여전히 이렇다 할 대책은 없다. 부모가 어린아이의 죽음에 가슴을 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강력한 규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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