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軍)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지만 어제 우리 입주 기업들의 개성공단 입출경(入出境)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공식적인 통신수단이 없는 가운데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북측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인편(人便)으로 남북 왕래를 처리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사업을 계속하고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의향이 있다면 즉각 군 통신선을 회복시켜야 한다.
군 통신선 단절은 2002년 양측 국방장관이 서명한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 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 작업의 군사적 보장’에 따른 남북 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북한은 2006년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에서 추가한 2개의 군 통신선도 끊어버렸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대화의 끈을 이어가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제안이 있던 날 마지막 소통의 통로마저 단절한 것은 유감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입출경까지 막지 않은 것은 전면적 대결 기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달러는 안정적으로 챙기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현재 5만3448명의 북한 근로자가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은 약 8000만 달러(약 890억 원)이다. 개성공단 가동에 차질이 생기면 북한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고 북한 정권도 상당한 재정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은 북한에 시장경제의 가치를 전파하고 북한 주민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남북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소통의 장이다. 우리의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고 개성공단 제품이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 ‘메이드인 코리아’로 인정받는다면 남북 협력의 수준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상정해야 한다. 매일 800명이 넘는 우리 국민이 북한 군부의 관리 아래 남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고 900명 가까운 사람이 북한 땅에 머물고 있다. 상황에 따라 북한이 우리 근무 인원의 출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졸지에 수백 명의 국민이 인질로 바뀌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에서 보았듯 남북합의서가 보장한 신변안전보장각서는 언제든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만사불여(萬事不如)튼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