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각각 4개월과 5개월 남기고 최근 사퇴한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과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11년 공공기관장 경영평가’에서 우수등급인 A를 받았다. 사의를 밝힌 강만수 KDB산은금융그룹 회장 역시 ‘2011년 기관장 자율경영 이행실적 평가’에서 한국공항공사(94점) 다음으로 높은 우수등급(92.4점)을 받았다.
이들은 국정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물러난다고 했지만 실상은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장 대폭 물갈이 조짐에 마음에도 없는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각 부처 산하기관장은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내부 신망이 높고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임명한다는 것이 인사 원칙”이라고 설명했으나 믿기 어렵다.
우수평가를 받은 공공기관장을 줄사퇴시키는 상황이면 실제 인사 기준은 전문성이 아닌 국정철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첫 공공기관장 인사인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은 박근혜 선거캠프 출신에다 육영수 여사를 그린 뮤지컬을 공연한 인사였다. ‘친(親)MB 인사’를 들어내고 ‘친박 인사’를 앉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그제 111개 기관의 6개월 이상 재직 기관장 100명과 상임감사 58명을 대상으로 경영실적 평가에 착수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대통령과 주무 장관에게 기관장 해임을 건의한다지만 과연 엄정한 평가가 나올지 의문이다. 물갈이를 위한 ‘입막음용’ 평가라면 비싼 세금을 들여 할 필요가 없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낙하산 인사는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기업의 늘어나는 부채 원인 중 상당수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기관장 선임 때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국민은 기억한다. 기관장 자리를 선거 공신들에게 보은(報恩)의 표시로 나눠주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낙하산 인사를 들어내고 또 다른 낙하산 인사를 앉히는 건 잘못된 관행의 되풀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