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낮아지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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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일 03시 00분


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스타도 이런 벼락 스타가 없다. ‘빈자(貧者)의 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 얘기다.

하느님의 대리인이라는 높고 경건한 자리에 있던 교황이 보통 사람의 곁으로 내려왔다. 선망하는 대상이 손에 잡힐 듯하면 한없이 흥분하는 게 대중 아닌가. 그런데 구름만 타고 다닐 것 같던 이가 갑작스레 나타나 아기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입맞춤을 하며, 기자들에게 “힘드시죠?”라고 다정하게 묻는다. 열광하는 신도들을 향해 근엄하게 손을 흔들기보다 웃으며 같이 박수를 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언행이 연일 화제다.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야기도 있겠다 싶어 한홍순 주교황청 한국대사에게 전화를 했다. 한 대사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22일 외교사절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를 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물질적 가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정신적 가난이다. 정신적 가난은 특히 부유한 나라에 널리 퍼져 있다. 정신적 가난은 무엇인가. 베네딕토 16세는 ‘상대주의의 독재’라는 말을 했다. 사람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모든 판단의 궁극적인 척도로 삼으면 공생이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자기만 먼저 생각하는 이런 상대주의적 독재가 만연하면 어찌 참된 평화가 있을 수 있겠나. 잘사는 나라의 잘사는 국민 사이에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힘 있고 가진 나라와 많이 가진 부자가 더 문제라는 얘기다.

이런 말도 했다. “교황을 지칭하는 폰테피체(Pontifice)라는 말은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늘을 잊어버리고 사람들 간에 다리를 놓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어찌 참된 다리를 놓을 수 있겠나.” 내공 깊은 불교 스님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처럼 간결하고 명료하게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설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엊그제 성(聖)목요일을 맞아 교황이 로마 북쪽의 한 소년원을 찾아 소년 소녀 재소자들에게 세족례를 하는 모습이 크게 보도됐다. 원래 성목요일은 전통적으로 교황이 로마교구청이 있는 성요한 라테란 대성당에서 만찬 미사를 가져온 날이라고 한다. 교황청 실무자들은 물론이고 외교사절단도 그렇게 알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행사가 취소됐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알고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린 재소자들을 만나러 소년원에 가겠다며 라테란 성당 미사를 취소시켰다는 것이다. 전통과 형식보다 내용과 가치를 우선하겠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교황청의 일상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교황이 숙소로 사용하는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미사를 볼 때 교황청에서 일하는 청소부, 상점과 식당의 직원 등 일반인이 번갈아가며 함께 미사에 참여한다고 한다. 또 교황은 미사가 끝나면 일반 신자들의 맨 뒤에 와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는 것. 과거의 교황들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다. 교황의 전용 의자도 단순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전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에서 폴크스바겐으로 교체됐다는 후문이 들린다.

권력자가 낮아지면 국민은 감동한다. 그러면 못할 일이 없다. 한 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이 예비하신 히든카드 같다”고 말했다. 사제의 성추문, 교황청 비리 의혹 등으로 위기의 시대를 맞은 가톨릭이 진정한 승부사를 맞은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서 권력자가 낮아지고 소통하려고 하면 얼마나 큰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교황#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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