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 둘만의 힘으로는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가깝게는 두 팔 걷고 나서서 도와주는 양가 부모님이 계셨다. 퇴근이 들쑥날쑥한 엄마 아빠를 대신해서 저녁 늦게까지 아이 셋을 친자식처럼 챙겨 주시고 겨우 퇴근하시는 ‘보모 이모’의 도움도 컸다.
하지만 가장 큰 공은 ‘육아휴직제도’에 돌리고 싶다. 아내가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제도 덕분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전문직이 아니고 일반 사기업체에 다니는 월급쟁이 맞벌이 부부가 아이 셋을 낳고 키우는 것은 육아휴직제도가 활성화되기 전 같았으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기업체에서도 육아휴직이 활성화되면서 이런 기회가 우리 부부에게도 돌아왔다.
하지만 한 사람의 기쁨이 타인에게도 기쁨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육아휴직제도의 이면에는 남아 있는 동료들이 육아휴직자의 업무를 그대로 분담하는 고충이 있다.
법적으로 ‘만 6세 이하의 자녀를 둔 1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반드시 허용해야 한다’, ‘육아휴직 종료 후에는 휴직 전과 동일한 업무 또는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경영진이 육아휴직자를 차별하지 않도록 법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는 1년 후면 다시 복직시킬 직원을 대신해서 1년짜리 비정규직을 뽑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어느 정도 숙련도가 필요한 업무라면 대체 인력을 뽑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일반 기업에서는 육아휴직자가 생겨나게 되면 대부분 같은 팀원들이 휴직자의 업무를 소위 ‘N분의 1’로 나누게 된다. 팀원이 많으면 부담이 좀 덜하겠지만 대한민국 회사 조직이라는 곳은 정말 타이트한 인력 운영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있지 않던가. 일반 기업에서 많아 봐야 4, 5명인 팀원이 육아휴직자의 업무를 1년 동안 나눠서 한다고 생각해 보라. 물론 늘어난 업무량만큼 월급을 더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이 때문에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워킹맘 중 상당수는 육아휴직보다 차라리 사직을 택하게 된다.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팀원들이 자신 때문에 1년 동안 과중한 업무로 고생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사직해서 빨리 충원하게 하는 편이 주변 동료들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7, 8년 전 총각 시절 그런 선택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바로 위에 모시고 있던 선배도 임신부였다. 나는 팀장에게 몰래 가 “직장 선배 때문에 일 못해 먹겠다”고 읍소했다. 광고대행사 일의 특성상 야근은 기본이고 밤샘 촬영도 많은데 그런 종류의 업무는 선배가 임신했다는 이유로 모두 나한테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남자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해 댔다.
결국 그 선배는 3개월 출산 휴가 이후 퇴사하겠다고 했다. 그런 선배에게 난 “차라리 출산하자마자 퇴사했으면 벌써 후임자 뽑아서 덜 고생하지 않았느냐”는 말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럽다.
당시 임신했던 선배 때문에 늘어났던 업무량은 ‘가족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비용 분담’이라는 거창한 명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젠가 우리 가족이 돌려받게 될 ‘품앗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 정도는 했어야 했다. 그때는 그런 생각에 미치지 못했으니, 이제야 그 선배에게 미안할 뿐이다.
지금 육아휴직 중인 아내를 보고 있으면 집사람의 팀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자신들에게 돌아올 업무 부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육아휴직을 지원해 주고 인정해 주는 그들이야말로 우리 가족이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할 이들인 것 같다.
우리 아이 셋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은 이런 사회적 비용을 기꺼이 부담해 주는 이 땅의 수많은 월급쟁이 덕분이니까. 이 땅의 모든 육아휴직자의 동료 월급쟁이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경석
※ 30대 중반의 광고기획자인 필자는 여섯 살 큰딸 보미와 세 살 유나·지우 쌍둥이를 키우는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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