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87>모과꽃잎 화문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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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꽃잎 화문석
―공광규(1960∼)

대밭 그림자가 비질하는

깨끗한 마당에

바람이 연분홍 모과꽃잎 화문석을 짜고 있다

가는귀먹은 친구 홀어머니가 쑥차를 내오는데

손톱에 다정이 쑥물 들어

마음도 화문석이다

당산나무 가지를 두드려대는 딱따구리 소리와

꾀꼬리 휘파람 소리가

화문석 위에서 놀고 있다

대나무라면 국기 게양대밖에 못 보고 자라고, 모과나무도 열매는 봤는데 꽃은 본 적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남도로 내려가면 집집마다 뒤란에 대숲이 울울하다는, 그래서 초여름이면 고구마 뽑듯이 예사로 죽순을 뽑아 무쳐 먹곤 했다는 얘기를 그곳 태생 친구한테 신기해하며 들은 기억이 난다. 대나무 숲이 많으니까, 가령 꽃무늬 넣어서 짠 돗자리 같은, 대나무로 만든 생활용품도 발달했다고.

친구의 연로하신 어머니를 뵈러 간 화자, 그 어머니가 한창 젊으셨을 때도 그 집을 드나들었을 테다. 온화하고 정갈한, 어쩌면 우아한 기품마저 감도는 시골 부인이 떠오른다. 누구나 가슴에 남는 친구 어머니가 있을 것이다. 이상(理想)의 어머니랄까. (무뚝뚝하고 드세고 욕쟁이인 내 어머니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차마 한 적 없을 테지만.) 그러할 친구 어머니가 쑥차를 내오시는데 손톱에 쑥물이 들어 있다. 초봄에 부지런히 쑥을 뜯으셨을 테다. 쑥국도 끓이고 쑥차도 만들고, 말려 두었다가 겨울이면 두고두고 쑥떡을 만들 만큼 많이도 뜯으셨을 테다. 반가이, 조금은 수줍게 친구 어머니와 마주앉아 참으로 오랜만에 친구 집 마당을 내다보는데,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을 테다. 모과꽃잎 흩날려 깨끗한 마당에 수를 놓누나. 딱따구리 소리, 꾀꼬리 소리도 화자 마음에 아롱아롱 수를 놓누나. 햇살 맑은 오월 어느 날의 남쪽 시골 마을 정경이 한 폭 그림같이 눈에 선하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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