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이태균]총리의 역할과 목소리는 어디로 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박근혜 정부가 출발하기 전에 총리가 실질적인 행정수반으로 장관들의 인사 제청권과 행정을 책임지는 책임총리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인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어찌된 일인지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목소리만 들리고 총리의 말은 들어볼 수가 없으니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지 매우 궁금하다.

지난 대선에서 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만 해도 국민들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섬세하면서도 통 큰 정치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새 정부가 내각도 완전히 구성하지 못한 채 첫발을 내디뎠거니와, 장차관 후보자들이 청문회도 하기 전에 이러쿵저러쿵 말썽 속에 중도에 자진해서 후보직을 포기하는 초유의 사태를 보면서 박근혜 정부에 걸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자부했던 박 대통령은 비록 장차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장차관 후보자를 골라 지명하는지 국민들에게 명확한 기준을 알려주고, 그러한 기준에 알맞은 인물인지 검증하는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가동해야 할 것이다. 대선 공약에는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정책 방향에 맞는 장차관을 일꾼으로 뽑아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 박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대선 때의 각오대로 인사권을 행사하도록 때로 박 대통령의 비위를 거스르며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청와대 보좌진이 있는가. 인사위원장을 겸한 대통령비서실장이나 검증의 실질 책임자인 민정수석에게 책임을 돌린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지금은 정상적인 인사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청와대 참모나 장차관 후보자 지명은 박 대통령의 ‘독단적인 메모 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달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도대체 총리의 목소리와 역할은 어디로 갔는가? 총리는 후보자 청문회에서 밝혔던, 실질적인 장차관의 인사 제청권을 행사하는 총리가 되겠다던 각오와 다짐을 지금도 갖고 있는가? 왜 이런 사태가 계속되는데도 총리는 침묵만 하고 있는가?

행정부의 2인자인 총리의 여러 가지 역할 중에서 지금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장차관의 인사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보다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 만약 총리가 앞으로도 장차관 인사에서 문제점이 노출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총리 스스로 맡은 직무를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총리가 이 점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밝혀주길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기 바란다.

필자는 장차관의 후보자 지명의 결과만 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박근혜 정부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하면 앞으로 5년간도 기대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이 절대 정답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편타당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박 대통령과 위정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갈수록 높아지고 총체적인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임을 직시한다면 총리가 내각의 수반으로서 지혜롭게 행정력과 정치력을 발휘해, 총리로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음을 총리는 알아야 한다.

이태균 ㈜동명에이젼시 대표이사
#박근혜 정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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