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賢母)의 아이콘인 맹모(孟母)는 아들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 공동묘지 인근에서, 시장통으로, 다시 서당 곁으로 옮긴 결과 맹자가 글월을 가까이해 대성했다는 맹모삼천지교는 교육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이 맹모가 2013년 현재, 한국에 산다면 도대체 어디로 이사를 할지 궁금하다. 신학기가 한 달 정도 지나니 주변에서 부쩍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남자애는 환경이 중요하다는데 몇 학년 때 강남으로 옮겨야 하니?” “옆집 애 다니는 사립초는 미국 교과서로 수업한다는데 우리 딸 대기라도 걸어볼까?”
학교 유형과 지역에 따른 학력 격차가 커지고, 이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면서 이른바 ‘강남 3구’ 밖의 학부모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내 아이가 더 잘될 수 있는데, 내가 좋은 환경으로 옮겨주지 않아 기회를 놓치는 것만 같다. 정말 사립초가, 특수목적고가, 강남 3구가 ‘좋은 환경’일까? 요즘 교육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진지하게 물어봤다.
30년 경력의 입시학원장 A 씨는 두 소년의 예를 들었다. 서울 강북에서 같은 P아파트에 살며 초등학교 내내 1, 2등을 다투던 둘은 6학년 때 강남으로 이사했다. 같은 중학교에 갔는데 한 아이는 계속 1등을 하고 다른 아이는 중위권 밑으로 떨어졌다.
1등을 하는 아이는 “내가 살던 P아파트랑 이 동네 P아파트는 브랜드가 같은데 딴판이다. 나는 시설 좋은 이 동네에 살고 싶다”면서 공부에 열을 올렸다. 반면 다른 아이는 “애들이 다 나보다 좋은 아파트에 살아서 기가 죽는다. 옛날 P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소심한 아이에게 강남은 독이 된 셈이다.
B초등학교 교장은 10여 년 전 제자였던 소녀 이야기를 했다. 두뇌 회전은 영재급인데 유독 말이 없는 아이였다. 당시 리더십 열풍이 불면서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유명한 발표학원에 다니더니 자폐 증상이 생겼다. 남들이 좋다 하는 학원에서 딸은 좌절감만 얻은 걸 부모가 몰랐던 탓이다.
어쩌면 맹자는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잘 적응하는 아이였기에 맹모삼천지교가 빛을 발했을지 모른다. 맹자가 주변에 둔감하거나 혼자 있길 좋아하는 아이였다면 공동묘지가 결코 나쁜 환경이 아니었을 거다. 말도 많고, 정보도 많고, 훈수 두는 사람도 많은 오늘날 교육 환경에서라면 되레 맹모의 이사벽(癖)이 애를 망쳤을지 모를 일이다.
내가 만난 교육 전문가들의 답은 하나다. 아이 기질에 맞는 환경이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 강남을, 특목고를 맹목적으로 바라보기 전에 자녀의 성향을 살피는 게 먼저다. 맹모에게 ‘어디로 가시려나이까’를 외칠 일이 아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