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합죽이가 되겠다. 지난 세월 너무 옹다물고 살다보니 어금니에서부터 하나씩 뽑아낸 것이 이제는 오물거린다.
왜 말 한마디 하지도 않고 왜 큰소리 한번 치지도 않고 왜 소리내 한번 울지도 않고 왜 벌컥 화 한번 내지도 않고 속으로 이만 앙다물고 살았을까.
별것도 아닌 세상, 별것도 아닌 일들인 것을, 죄 없는 이만 아프게 했구나. 그 핑계로 모두 뽑아버렸구나. 내 나이 오십줄에 벌써……
10년 만이다. 국민가수 조용필 씨가 이달 말 새 앨범을 내놓는다. 통산 19번째 앨범 ‘헬로(Hello)’에서 그가 작곡한 노래는 하나다. ‘어느 날 귀로에서’란 곡으로 사회학자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가사를 썼다 해서 화제다. 둘의 인연은 2006년 동아일보에 송 교수가 ‘내 마음속의 별-스타가 본 스타’로 조용필 편을 기고하면서 시작됐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의 추억을 아파하지 마라/나는 왜 귀로를 맴돌고 있나 아직 꿈이 가득해 그 자리에.’ 이런 노랫말과 최근 그가 펴낸 책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는 맥이 닿는다. 올해 나이 쉰일곱의 송 교수는 자신을 포함해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의 삶을 찬찬히 복기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 50달러 시대에 태어나 2만 달러에 이르는 현기증 나는 거리를 숨 가쁘게 달려온 세대’는 ‘최빈국이던 나라를 선진국 문턱까지 밀어올리고 이제 현장에서 물러나는 중’이다.
세대에 대한 관심도 유행을 타는 것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20대의 현실이 주목받더니 지난 대선에서 투표장에 총출동한 50대에 화들짝 놀랐던 사회의 시선은 그들이 걸어온 궤적에 쏠리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호들갑에 앞서 박찬 시인은 ‘오십 줄’이 공유하는 경험과 기억을 호명했다. 인생의 책무에 짓눌려 부질없이 흘려보낸 시간들, 하릴없이 죄 없는 치아만 남아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서글픔과 다른 한편으로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잔잔한 시어로 삶의 이치를 들려주던 시인은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고 슬그머니 가기 참 좋은 때인 것 같다…’(‘적막한 귀가’)며 오십 줄 끄트머리에 세상을 떴다.
‘50세, 빛나는 삶을 살다’란 책을 보면 지천명을 지나 도전과 열정을 불태운 인물이 수두룩하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나이가 55세,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완성한 것이 54세, 평범한 세일즈맨 레이 크록이 ‘맥도널드’의 1호점을 열었을 때가 53세였다.
국내 화단엔 장년의 패기를 자랑하는 화가가 늘고 있다.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지리산을 그림으로 순례하는 전시를 연 56세 화가 이호신 씨는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4개층 전시장에 2m 넘는 한국화가 즐비하다. 신령스러운 봉우리, 너른 들녘과 굽이치는 강, 정겨운 마을을 품은 화폭은 자연과 우직하게 대면하며 길어 올린 기운을 응축한 그의 분신이다.
이제 그 막둥이까지 오십 줄에 올라선 베이비부머 세대는 약 715만 명. 부모 봉양과 자식 부양을 의무로 여기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기 노후는 직접 챙겨야 하는 첫 세대란다. 쉰 살로 살아가기 참 힘든 세월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엄살 부리며 신세 한탄하기엔 이르다. 돌아보면 인생의 어느 시절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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