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종우]이름 로마자 표기 제대로 씁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8일 03시 00분


전종우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지방이전추진단장
전종우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지방이전추진단장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정해진 말을 써야 한다. 언어는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불역성’을 가졌다고도 한다. 얼마 전 KBS 드라마 ‘차칸 남자’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끝에 ‘착한 남자’로 바뀐 일이 그러한 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데 아무런 약속 체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양 제각각 쓴다. 우리는 보통 명함 뒷면에 영문을 새기고 외국인을 만났을 때 그것을 내민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의 명함을 받아 보면 필시 정확한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거나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틀린 유형은 서양 기준에 맞춰 이름, 성의 순으로 쓴 경우가 과반(53%)이고, 성과 이름 사이에 쉼표를 넣은 경우(Hong, Gil-dong 또는 Gil-Dong, Hong)가 많았다. 성 뒤에 쉼표를 쓰는 것은 논문 인용, 저자 색인 등의 실용적 목적으로 쓸 수 있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서구인이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우므로 피해야 한다. 성과 이름을 음절별로 띄어쓰기(Hong Gil Dong),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쓰기(HONG GIL DONG), 이름의 초성을 약어처럼 쓰기(G. D. Hong)도 쉽게 눈에 띄는 사례이며 그 외 ‘Gil D. Hong’이라던가 ‘GIL DONG hong’처럼 이상스러운 것들도 있다.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Hong Gildong’ 또는 ‘Hong Gil-dong’이다. 같은 회사 직원들의 명함도 각기 오류가 많은 것을 보면 개인의 뚜렷한 주관 없이 지정된 인쇄소에서 관례적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 많은 듯하다.

이번에 어문 정책 당국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올바른 일이다. ‘우리나라의 높아진 국격에 맞추어 우리 언어문화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이름의 로마자 표기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영문 명함과 함께 각 기관, 회사의 영문 누리집(홈페이지)과 여권을 들 수 있다. 영문 누리집에는 보통 그 조직 기관장의 인사말 밑에 이름이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필자가 임의로 선정하여 조사해 보니 관공서는 상대적으로 낫지만 공공기관이나 민간회사는 명함의 경우와 비슷하게 이름, 성의 순으로 잘못 쓰거나 쉼표를 쓴 곳이 대부분이다. 여권은 현재 성(Surname)을 따로 쓰고 그 다음 줄에 이름(Given names)을 쓰도록 되어 있는데 모두 대문자로 표기한다. 이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지침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하더라도 여권을 새로 만들거나 갱신을 할 경우에는 이름의 각 음절을 띄어서 쓰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여권이 ‘성명의 로마자 표기법’에 큰 영향력이 있는 점을 감안하여 이름은 붙여 쓰거나 필요시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쓰도록 관계기관이 국민들을 계도해 주었으면 한다.

성명의 올바른 로마자 표기를 정착시키기 위해 어문 당국도 ‘성, 이름’순 표기 권장안을 범정부적으로 시행하고, 지속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활발한 국제 교류가 이루어지는 오늘날, 한국인의 성과 이름에 대한 혼선 없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더이상의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없애기 위해서 이번 기회에 이 문제가 확실히 정립되기를 고대한다.

전종우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지방이전추진단장
#이름#로마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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