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中區)가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불법 농성천막을 철거한 뒤 하루 만인 5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곳에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중구가 천막을 철거한 자리에 화단을 만들고 꽃을 심은 것을 비꼰 것이다. 자신도 책임이 있는 일을 남의 일처럼 논평한 것이 우선 듣기에 거북하다.
농성장 철거가 잘못된 것이라면 서울시장은 이를 시정할 수 있다. 현행 도로법상 도로(인도 포함) 관리 권한은 시장이 국토교통부에서 위임받아 다시 구청장에게 재위임하는 것으로 돼 있다. 시장은 구청장의 명령이나 지시가 법령을 위반했거나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고 판단하면 위임을 철회하거나 시정을 명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시장은 농성천막이 설치된 이래 줄곧 뒤에서 철거 반대만 해왔다. 중구를 지지하자니 농성자들로부터 욕을 먹을 것이고, 중구에 반대하자니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걱정했을 것이다. 시장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중구의 철거에도 불구하고 농성자들이 다시 대한문 화단 앞을 점거했다. 서울시장도, 국토교통부 장관도, 대통령도 모른 체하는 사이 최창식 중구청장만이 법치를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판이다. 계고장도 몇 차례 보냈고, 강제 철거도 이번만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도루묵이 됐다. 대한문 앞의 농성천막이 도로법을 위반한 불법 시설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서울 시민이 대한문 앞을 오가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농성천막 철거를 원할 만큼 속이 좁지는 않다. 하필 소중한 문화재이자 외국인도 많이 찾는 도심의 관광명소를 농성장으로 삼은 행태가 불만인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대한문 옆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지 1년이 다 돼 간다. 서울시장도 출퇴근길에 그 모습을 매일 보았을 것이다. 아이디어가 많다는 박 시장은 구경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앞에는 농성을 위한 공간이 있다. 서울시가 어느 정도 유동인구와 상징성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도 주지 않을 공간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박 시장의 말대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