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의사를 하면서 옛 지도교수님이던 조두영 선생님을 종종 떠올린다. 전공의 시절 이후로 선생님의 말씀이 늘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 선생님은 정신분석을 전공하셨는데, 겉 표면이 아닌 본질적인 부분을 꿰뚫어보셨다. 환자의 단편적인 정보들만을 갖고도 환자의 가족 관계에 숨어 있는 문제의 원인을 짚어내는 식이었다. 아마도 환자 한 명 한 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한 지금도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들을 상담하는 일을 계속 하고 계신다.
조 선생님이 쓰신 ‘행동과학’이라는 책은 의사가 환자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본 ‘의사들’에 대한 분석도 담고 있다. 왜 의사들이 정신과 소아과 외과 등의 특정 분과를 자신의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특히 흥미롭다.
예를 들어 소아과를 선택한 의사들의 속마음은 다음과 같다. (물론 모든 소아과 의사에 관한 내용이 될 수는 없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소아과를 선택하는 의사들의 내면에는 ‘내가 엄마였다면 어렸을 때의 나를 그렇게 돌보지는 않았을 거야’라는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의대 동기 중에 “재수를 해서라도 소아과에 다시 들어가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찮게 그 친구의 돌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친구는 아들만 셋인 집의 막내아들이었는데, 돌에 찍힌 사진에는 내복을 입은 상태로 미역국을 떠먹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보통 돌 사진이라고 하면 잘 차려진 돌상에 멋진 한복을 입고 돌잡이를 하는 모습을 떠올리는데 이런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 그의 첫째 형은 돌잔치를 근사하게 받았을 것이다. 둘째 형도 그런대로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말썽꾸러기 두 아들에게 지친 엄마는 셋째 아들에게까지 그럴듯한 돌잔치를 열어 줄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어릴 적 두 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돌봄을 소홀하게 받은 것이 소아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친구는 소아과 의사가 된 뒤 어린아이들을 정성스레 돌보면서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본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이런 심리는 표면적으로는 멋지게 보이진 않아도 지극히 정상적인 심리이다. 일종의 ‘승화’인 셈이다. 긍정적인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한 성숙한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돌보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젊은 부모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가 먹고살기 바빠 자신을 데리고 가지 못했던 동물원을 이제는 아이와 함께 가서 휴일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나 자신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던 돌봄을 스스로 느낀다.
마음이 우울할 때 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부모 입장이 되어 돌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아지를 키워 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하는데 이 조언을 따른 많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더 안정이 되었다거나, 쓸쓸한 마음이 덜어졌다는 얘기를 한다. 강아지를 돌보고 씻기고, 같이 산책하고 뛰어놀고, 안아 주고 쓰다듬어 주고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과정 자체가 실은 다 큰 어른이 된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어린아이’, 조금은 더 사랑을 받았어야 할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을 돌보아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신체적으로도 유익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학문적으로 밝혀졌다. 사람이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대개 심박 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오르는 등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반려동물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심박 수가 낮아지거나 혈압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 연구팀은 한 회사에서 애견과 함께 출근한 직원, 애견이 있지만 함께 출근하지 않은 직원, 애견이 없는 직원의 스트레스 및 직장 만족도 등을 비교했다. 그 결과 아침 업무 시작 전에는 스트레스 정도에 차이가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애견과 함께 출근한 직원의 스트레스 수치는 감소한 반면에 애견과 함께 출근하지 않았거나 애견이 아예 없는 직원의 스트레스 수치는 증가한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듯 반려동물을 돌보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반려동물만이 아니라 주인 자신의 마음의 건강, 몸의 건강도 돌보는 행동인 것이다.
반대로 반려동물을 학대 혹은 방치하거나 버리면 버림받은 유기견만 상처받는 게 아니다. 버린 주인은 그 자신이 비록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마음속에 결국 나 자신을 포기해버린 것과 같은 상처가 남게 된다.
다만 고령자의 경우 신체적으로 반려동물을 씻기고 산책시키고 돌보는 것 자체가 심한 부담이 되어 우울증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 중증 우울증 상태에서는 동물을 돌볼 만한 마음의 여력이 없을 때도 많다. 따라서 신중히 고려한 후에 끝까지 반려동물을 책임지고 돌볼 수 있을 경우에만 데려오는 것이 좋다.
이 글은 우리 가족과 10년 이상 함께해주고 있는 충직한 반려견 ‘찰리’에게 헌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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