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북쪽의 자존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하종대 국제부장
하종대 국제부장
“우리가 내겠습니다.”

“놔 둬라. 한 달 생활비가 200위안이라며….”

“아뇨. 우리가 내야 맞죠.”

“놔 둬, 인마.”

10년 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의 일이다. 북한의 대학생 2명과 식사를 함께 했다. 학교 부근의 식당치곤 좀 고급스러운 곳이라 3명의 식사비가 170위안가량 나왔다. 당시 한국 돈으로는 2만2000원 안팎의 금액이었다.

연간 3000만 원 이상의 연수비를 받는 기자로서는 별거 아니었지만 중국 정부에서 매달 지원받는 200위안으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170위안은 정말 ‘큰돈’이었다. 당시 학생식당의 한 끼 식사비는 2∼5위안이었고 중국인 대학생들의 한 달 생활비는 300∼400위안 수준이었다. 북한 학생 2명과 남한 학생 1명이 먹었으니 식비는 자기들이 계산해야 한다는 북한 학생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내고 나왔다.

북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자존심’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1996년 10월 최덕근 영사 피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갔을 때의 일이다. 버스정류장 사무실 수리 현장에서 만난 북한 건설노동자 3명은 구멍이 숭숭 뚫린 메리야스에 꾀죄죄한 체육복 바지 차림이었다. 하얀 헝겊 신발이 검다 못해 반지르르 윤이 났다. 부엌이라는 곳에 들어가니 찬장에 양배추 반 토막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같은 동포로서 눈물이 날 지경이어서 가지고 있던 달러를 쥐여주려 했지만 한사코 사양했다. “이국에서 동포를 만나니 너무 반가워 이러는 것”이라며 호주머니에 찔러 주니 못 이기는 척 받았다.

최근 북한은 연일 “존엄을 모독하거나 훼손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발톱을 세우고 있다.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 ‘정전 협정 파기’ ‘전면 전쟁, 핵전쟁 불사’에 이어 ‘개성공단 잠정 폐쇄’까지 위협의 수위를 높였다. 이제 직접 도발에 나서지 않는 한 남한을 위협할 더이상의 수단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자존심은 북쪽 사람들이 센 것 같지만 실제는 남쪽을 포함해 우리 한민족 전체가 다른 어느 민족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 ‘빠져 죽어도 개헤엄은 치지 않는다’ 등 자존심과 관련한 다양한 속담이 면면히 내려오겠는가.

문제는 사소한 자존심 싸움도 점차 수위를 높이다 보면 양쪽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 자존심 싸움에서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진 자는 항상 상대보다 좀더 힘이 강하고 여유를 가진 쪽이라는 사실이다. 약간의 양보가 곧바로 자존심의 훼손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남한의 2.5%에 불과하다. 북한의 연간 원유소비량은 남한의 1%에도 못 미친다. 오죽하면 자존심 강한 북한 당국이 남한의 최저임금(월 40시간 기준 101만5740원)의 16.8%에 불과한 월 150달러(약 17만1000원)의 임금에도 개성공단에 근로자 5만3000여 명을 보내주겠는가.

남북은 이제 샅바 싸움이나 자존심 싸움을 할 단계가 지났다. 남북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음을 2만4600여 명의 탈북자 수가 말해주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공포를 느낄 이유도 없다. 한편으론 핵을 가졌다지만 지난해 3월부터 입대 병사의 신장 기준을 남한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인 142cm로 낮출 만큼 청소년의 영양 상태가 불량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북쪽과 똑같이 ‘위협 공세’를 벌이지 않는다 한들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는 않는다. 특히 북한의 자존심을 일부러 긁으며 도발을 자극할 필요는 더욱 없다. 진실로 강한 자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북한 역시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 8000만 민족의 생존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북한#자존심#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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