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아수라장 학원가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오후 10시의 학원 거리를 보여주고 싶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나 노원구 중계동, 경기 고양시 후곡마을 등에서 한국 교육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교육 혁신’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학부모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고는 자식들에게 뛰어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한국 부모들의 열망과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늘 한국 교육을 아낌없이 칭찬해 온 그가 밤의 학원 거리를 직접 본다면 한국 학부모들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까.

오후 10시 무렵의 학원 거리를 보면서 놀랄 일은 여러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수의 학생 무리가 아니다. 늦은 밤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 한국의 사교육 열기는 이미 세계가 알아주는 일. 정작 기가 막히는 것은 학생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행태다. 한마디로 막무가내다.

학부모들은 학원 일대 도로 양쪽의 한 개 차로를 완전히 장악해 무단으로 주차한다. 그것도 모자라 일부 부모는 2차로에도 마구 차를 댄다. 차들이 줄지어 달리는 큰 길 가운데에 비상등을 켠 차가 몇 대나 늘어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 부모들은 그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급한 상황에나 써야 할 비상 깜박이를 불법 주차의 면죄부로 여긴다. 경찰과 구청이 내건 ‘불법 주정차 특별 단속’이란 플래카드가 무색하다. 어떤 학부모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차도를 왔다 갔다 하며 자기 아이를 찾는다. 옆으로 차가 달려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학생들은 차도로 뛰어들어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는 부모들의 차에 올라탄다.

일부 이면도로에는 차들이 서로 엉켜 꼼짝달싹 못한다. 학부모들은 맞은편에서 차가 오더라도 빈 곳이 생기면 그냥 주차를 하고, 자기 아이들이 타기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차 안에서는 부부가 싸우기도 한다. “민망하니 빠져나가자”는 쪽과 “무슨 소리냐. 버텨야지”라는 쪽의 충돌이다. 그 새에 끼인 택시는 애꿎은 경적만 계속 울려댄다. 인근 주민들은 집에 갈 수도 없다.

정류장을 뺏긴 버스들도 길 한복판에 마구 정차한다. 수많은 학원 버스까지 가세해 학원거리 일대는 출퇴근 혼잡 시간 때나 다름없다. 밤의 학원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토요일 대낮에도 학원 끝나는 시간이면 같은 상황이 생긴다.

불법이 일상화되어 관행으로 굳어진 학원 거리. 이런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다. “내 자식 내가 아끼는데 누가 뭐라는가.” 학부모의 무조건적인 자식 보호를 누구도 못 말린다. 교육을 내세운 자식 사랑 앞에 법과 규정은 아무 쓰임새도 없다. 경찰이나 구청도 단속의 손을 놓고 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부모의 차를 타는 학생이든, 걷거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이든 마찬가지다. 아무리 일부라 할지라도 그런 부모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낄까. 아무데나 차를 대고, 비상등 켠 것으로 당당하게 불법을 정당화하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학원에서 밤늦도록 영어나 수학 배우기에 몰두하던 아이들이 난장판 같은 밤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은 법과 규칙의 무시다. 법 지키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시민의식 함양은 감히 바라기 어렵다. 양보나 배려와 같은 덕성을 말하는 것은 사치스럽다.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쯤은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누가 보든 말든 때론 불법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그런 것을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용기 없는 사람이 할 일이다. 이처럼 요령 넘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전국 중고교 부근의 등굣길에서 신호등이나 건널목을 무시한 채 그냥 도로를 건너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어른이 되면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며 불법 위장전입을 마다하지 않는 대법관이나 국회의원, 장관처럼 될 것이다.

누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국 교육과 학부모에 대해 조언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토록 칭찬해 마지않던 한국 학부모들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지 그는 들어보기는커녕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부모들의 열성 덕분에 한국 교육은 세계 정상급으로 평가된다. 영국의 텔레비전 방송 BBC는 2007년 한국을 세계 교육대국의 하나로 꼽았다. 이를 증명하듯 2012년 11월 영국의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주도한 ‘인지 기술 및 교육 성취도’ 조사에서 한국은 40개 나라 가운데 핀란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교육 책임성, 국제 시험 성적 등을 높이 평가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은 17위에 머물렀으니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이나 부모, 교사 누구도 만족하지 않지만 놀라운 외부 평가를 받는 한국 교육의 현실은 ‘교육의 역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조사 역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했다. 오로지 시험 위주의 암기식 교육, 지나친 사교육과 부모의 기대 등으로 인해 한국의 청소년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불행하다는 것. 그렇다고 해도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날마다 한국의 학원 거리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은 알 수가 없었을 터이다. 핀란드와 한국의 뒤를 이은 홍콩 일본 싱가포르 영국 어디에도 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학부모들의 지나친 행태를 봤다면 한국을 세계 2위의 교육 강국으로 평가하는 데 동의했을까. 오바마 대통령이 부모들의 열정을 상찬했을까.

교육에 관한 한 한국의 부모들은 참으로 담대하다. 어린아이들을 홀로 세계 구석구석까지 유학 보내는 것도 한국 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런 열정이 지나친 보호로 변질된 지 오래다. 직장 상사나 군대 부대장에게 스스럼없이 전화를 거는 어머니들이 갈수록 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기심으로 가득 찬 불법 주차,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정말 삼가야 한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