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그제 9개 대기업의 총수와 총수 일가(一家)의 편법적인 자산 증여 실태를 공개하면서 국세청에 증여세를 물리라고 통보했다. 해당 기업은 현대차그룹 CJ 롯데쇼핑 SK GS 동국제강 신세계 STX 대선주조다. 이들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부(富)를 대물림한 규모가 5조6000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4년 대기업들이 법망을 피해 세금을 내지 않고 상속 증여하는 행태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과세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동안 세금을 제대로 매기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도 문제지만 9년 동안이나 감사원은 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편법 증여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팔짱을 끼고 있던 감사원이 이제 와서 국세청 잘못을 지적하고 나선 것은 박근혜정부에 대한 ‘코드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를 내걸자 입맛에 맞는 ‘메뉴’를 한 건 내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양건 감사원장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유임 전화를 받은 직후에 이런 발표가 나와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태도로는 감사원의 독립을 확보하기 어렵다.
감사원이 발표한 일감 몰아주기, 일감 떼어주기,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 등 대기업의 부당한 사례를 보면 국세청이 따로 조사할 필요도 없이 세금을 매기기만 하면 될 정도로 매우 구체적이다. 그런 자료가 왜 이제까지 사장(死藏)되어 있었는가. 국세청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행여 그동안 알고 있으면서도 재벌들의 탈세를 눈감아주거나 세금을 깎아줬다면 직무유기다. 또 그 대가로 퇴직 후 대기업에 둥지를 튼 선배 세무공무원은 없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이들 9개 대기업의 편법 증여는 그동안 언론에도 적지 않게 보도됐고 재계에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이다. 정책 당국이 처벌할 의지가 없어서 그대로 방치한 측면이 없지 않다. 법망을 피해 부를 대물림하는 회사가 이들 대기업뿐인지도 의문이다. 모든 기업에 대해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세금폭탄을 맞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재벌들도 편법으로 부를 대물림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새 정부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이제 우리는 공정과 투명을 존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