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인사(人事) 스타일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난달 15일 경찰청장 인사도 그랬다.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이 치안총수에 오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소수였다. 그는 2005년 대통령치안비서관으로 일한 경력 탓에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노무현 정부의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유약함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래서 늘 하마평의 후순위였다. 그 대신 세간의 이목은 ‘경찰대 1기의 선두그룹’으로 꼽혀온 강경량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쏠려 있었다.
뚜껑이 열리자 희비가 갈렸다. 이 청장은 ‘경찰청장에 강경량 유력’이라는 언론의 오보 속에서 경찰청장에 올랐다. 본인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성격이 부드러워서 고분고분 다룰 수 있는 사람을 골랐다”는 관측이 꼬리를 물었다. 강 전 경기청장에 대해서는 “검경 갈등의 불씨인 경찰대 출신은 절대 안 된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세간의 무관심을 깨고 신데렐라처럼 치안총수에 오른 이 청장은 취임사부터 화제가 됐다. 문제는 취임사의 콘텐츠가 아니라 각주(脚註)였다. 석·박사 학위 논문 표절 논란으로 인사청문회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게 트라우마가 됐는지 특정 단어에는 주석까지 달아 놨다. 한 경찰 간부는 “경찰 생활 20여 년간 각주 붙은 취임사는 처음 본다”고 했다. 다른 간부는 “꼼꼼하신 건지, 아니면 정말 고분고분하신 건지 모르겠다”며 웃어넘겼다.
최근 실시한 간부 인사를 놓고도 “너무 유약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그는 건설업자의 고위층 성접대 로비의혹 사건을 지휘하던 수사국장을 지방경찰청장으로 보냈다. 사법시험 출신의 이 수사국장은 검찰 기류를 너무 의식한다는 이유로 수사실무팀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 또 사시 출신의 지방청 수사부장을 승진시켜 기용했다. 사시 출신이 연이어 수사국장이 될 수는 있지만 지방청 수사부장이 본청 수사국장으로 직행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경찰 일각에서 “청와대와 검찰 눈치를 너무 살피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 청장은 성접대 로비 의혹 사건이라는 지뢰밭 위에 서 있다. 벌써부터 이해관계자로부터 ‘후폭풍을 각오하라’는 경고성 발언이 경찰로 날아들고 있다. 덕장의 리더십만으로는 이 난관을 헤쳐가기 어려운 형국이다. 경찰 내부의 신망을 잃어 말단 조직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경찰에 주어진 4대악 척결이라는 국정과제도 달성하기 힘들어진다.
경찰청장의 2년 임기보장제가 지켜진다면 그의 퇴임일은 2015년 3월 28일이다. 그때 ‘청와대의 입김에 나부꼈던 치안총수’가 아닌 ‘너그러운 성품에 배포까지 두둑했던 리더’로 평가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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