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열린 ‘시인들의 봄’ 축제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올해로 15회째인 이 축제는 3월 9일부터 24일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시의 물결을 이루었다. 뜻 깊고 아름다운, 문화 선진국다운 봄 축제들이었다.
“모든 늑대 중에 예술가가 가장 잔인한 늑대이다. 경쟁자를 참을 수 없다. 자신이 유일하고 위대하고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프랑수아즈 지루가 한 말이지만 기실 나 또한 프랑스로 떠나며 시를 소통하고 즐기기보다 이 축제에 처음 초대된 한국 시인으로서 국수주의적 애국심과 경쟁심이 마음 깊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번 초대는 나의 시집 ‘찬밥을 먹던 사람’이 번역 출판된 것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이 시집이 프랑스 퀼튀르 라디오의 유명한 문학 프로그램인 ‘외칠 필요 없다’에 40분간 소개돼 반향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방송이 나가는 동안 출판사 사이트는 1시간에 500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서점들은 일제히 재주문을 했다고 한다. 90년 전통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유럽’지에 서평이 실리고, 시 전문지 ‘포에지’에도 다른 한국시와 함께 게재되는 영광을 안게 된 것도 특별한 것이었다.
한국학과가 있는 디드로대의 시 낭송을 필두로 소르본대, 크리메 시립 도서관, 언어 문화 대학 도서관 뷜라크에서 특강과 함께 시를 낭송했다.
한국문화원에서의 낭송 때는 클레르몽대의 노교수 폴 씨를 비롯해 유명한 작가 이자벨 라캉 등 문학계의 지성들이 많이 참석했다.
파리 도서전에서의 독자 사인회도 좋았지만 이번 초대 행사의 절정은 케 브랑리 박물관에서 열린 ‘바벨 포에티크’였다. 문명의 발원지에서 문자들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설치미술이 끝나는 지점에 세 개의 원시인 입상이 서 있는 홀에서 한국 이탈리아 러시아 콜롬비아 등 세계에서 초대된 시인 12명이 각자의 모국어로 시를 낭송했다. 북두칠성처럼 시인들이 청중 사이에 박혀 있다가 호명에 따라 시를 읊으면 전문 낭송가가 프랑스어로 읽었다.
대부분 퍼포먼스처럼 리듬과 몸짓 중심으로 읽었지만 나는 ‘유방’이라는 작품성 중심의 시를 골라 저음으로 차분히 낭송했다. 유방암 촬영을 하며 차가운 기계에 알몸을 대고 비로소 자신의 몸과 처절하게 맞닥뜨리는 존재의 고독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뜻밖에도 반응이 좋아 진열대에서 시집을 사들고 와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나는 한국의 여성 시인으로 사회와 관습이 주는 억압과 편견과 부자유 속에 뼈가 굵었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좋은 문학의 재료였고, 나의 문학이 주변부(peripheral) 언어인 한국어로 씌었지만 그것 또한 극복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나를 인터뷰한 한 여기자는 “당신은 이미 한국의 시인도, 여자 시인도 아닌 하나의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편집자 브뤼노 두세 씨는 프랑시스 퐁주의 시와 비교하여 한국에서 온 이 시인의 시는 사물에다 경험과 스토리를 엮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퐁주의 시와 다르다고 했다.
“나는 지금 여기와 관계를 가진 재미있고 특별한 것을 늘 주목한다”며 “개성은 재능보다 더 귀한 것이고 바로 그것이 본질이다”라는 시오랑의 주장을 그는 자주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적도 분단도 페미니즘도 아닌 예술이라는 것이다. 한류(韓流)이든, 그 무엇이건 사람들은 오직 독특하고 새로운 것을 기다리고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축제를 통하여 한국의 시는 작은 씨앗 하나를 퍼뜨린 셈이지만 이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대산문화재단과 번역자 김현자 씨, 오늘날 프랑스 현대시 비평을 주도하는 공역자 미셸 콜로 교수의 몇 년에 걸친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드디어 ‘시인들의 봄’은 막이 내리고 세계의 시인들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나 또한 글 쓸 재료가 풍부한 내 나라로 돌아왔다. 문득 이 땅은 문학 분야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원석(原石)의 매장량이 가득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북쪽으로부터 연일 불어오는 격앙된 어조의 불안과 핵과 미사일의 뉴스가 요동을 치는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 한가하게 시(詩) 축제를 얘기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기에 더욱 시의 효용과 가치를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국의 시가 유난히 강렬한 것은 사람들이 속으로 내뿜는 비명과 닮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긴 분단의 비극이 마비시킨 전쟁에 대한 불안감, 상투화된 이 습관들의 되풀이를 벗고 다시 새로운 언어를 만나야겠다.
분명한 것은 이 땅에도 ‘시인들의 봄’ 축제가 열릴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때까지 시인은 쓰고 또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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